U-20 형들 이어… 월드컵 베이비들, 반란의 8강

이태동 기자
입력 2019.11.07 03:00

2002·2003년생 U-17 대표팀, 유명 감독도 스타 선수도 없이 역대 3번째 월드컵 8강 진출
'유소년 전담' 김정수 감독 지휘… 상대 쥐고 흔드는 축구 펼쳐
11일 멕시코·일본전 승자와 격돌… 성인 대표팀 이어 4강 신화 도전

2002년 여름은 한국 축구에 길이 빛날 계절로 남아 있다. 성인 월드컵 4강 신화가 창조됐고, 한국 축구 역사가 바뀌었다.

뜨거웠던 그때를 전후로 태어난 2002, 2003년생 소년 21명이 세계무대에서 대형 사고를 쳤다. 한국 U-17(17세 이하) 축구대표팀은 6일 새벽 열린 브라질 FIFA U-17 월드컵 16강전에서 앙골라를 1대0으로 꺾고 8강에 올랐다. 1987년 서정원·신태용 세대, 2009년 손흥민·김진수 세대 이후 사상 세 번째 8강 진출이자 역대 최고 성적 타이기록이다.

김정수 U-17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이 6일(한국 시각) 앙골라전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톱 공격수 최민서가 전반 33분 역동적인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주장인 골키퍼 신송훈이 후반 막판 상대 소나기슛을 모두 막아냈다. 아프리카 3위로 올라온 복병 앙골라를 상대로 공수에서 짜임새 있는 경기를 했다.

유명 감독도, 스타 선수도 없는 팀이 이뤄낸 묵묵한 반란이다. 상황이 바뀌길 기다리기보단 먼저 변수를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통했다.

전에 없던 '자기 주도형 축구'

대한축구협회 김판곤 부회장은 이번 17세 대표팀을 두고 "국민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능동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라고 표현했다. 상대를 쥐고 흔들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있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팀이란 얘기다.

실제로 대표팀은 경기 시작하자마자 전 선수가 라인을 올려 세우고 상대를 압박한다. 공수 전환 속도가 매우 빨라 대부분 주도권을 갖는다. 16강전까지 4경기를 치르는 동안 6골을 넣었는데, 이 중 프랑스전(1대3 패)을 제외하고 5골을 전반에 터뜨렸다. 하도 일찍부터 뛰어다녀 후반 되면 체력이 일찍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지만,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잘 버텨내고 있다.

그동안 한국 축구에서 보기 힘들었던 형태의 축구다. 한국은 연령대를 막론하고 국제 대회에만 나가면 '전반에 버티고 후반에 승부 보기' 전략을 선호했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처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올해 U-17 대표팀은 이 관습을 거부했다.

선수들도 자기 주도 학습이 익숙하다. 16강전 전날 선수들은 마사지실에서 자율적으로 비디오 분석 미팅을 열어 상대 에이스 봉쇄법을 토론했다. 6일 경기에서 무실점 승리한 원동력이었다. 2002 멤버 이을용 제주 코치의 아들로 아버지와 포지션이 같은 좌측 수비수 이태석은 "동료들과 얘기한 뒤 왼발이 강한 지투를 오른발만 쓰도록 유인했던 게 잘 통했다"고 했다.

준비된 '무명' 김정수 감독의 반란

리틀 태극전사들의 각오 - 위 사진은 16강전 결승골을 넣은 최민서의 각오. '팀 성적 4강 이상'이란 문구 아래 '4강 50만원, 우승 500만원(엄마가 보내준대)'이란 글도 있다. 오재혁은 '개인보다는 팀으로 뛰기' 등 문구를 썼고 한국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선 그림을 그렸다(아래 사진). /KFA 인스타그램
별다른 기대를 받지 못했던 팀을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탈바꿈시킨 일등 공신은 김정수 감독이다. 그는 1997년 프로축구 대전에 입단해 2005년 부천(현 제주)에서 은퇴했다. 선수로선 큰 족적을 남기진 못했다.

이후 코치 생활을 시작해 2014년 협회 유소년 전담 지도자가 됐다. 2015 U-17 월드컵 등에 코치로 참가한 그는 '선수비 후역습'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기 쉽지 않다고 판단해 이번 대회를 앞두고 '공격적인 수비'를 다듬는 데 주력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쉽지 않은 금언을 이행하며 8강 성적을 냈다.

그는 선수들 심리 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지도자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A4 용지에 목표와 각오를 적고, 상상하는 모습 등을 그려 넣도록 했다. 16강전에서 골을 넣은 최민서는 '항상 생각하고 빠르게 판단하자' '엄마표 골 수당 있다(10만원)' 등 문구를 썼다. 대회 기간 21명 전원이 방문에 붙여놓고 보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해 월드컵 예선 격인 AFC 챔피언십에선 선수 부모들의 응원 메시지를 받아 영상으로 틀어줬다. 선수들이 울고 웃으며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대표팀은 오는 11일 오전 멕시코-일본전 승자와 8강전을 치른다. 김 감독은 "누구와 붙어도 상관없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끝까지 도전하고 모험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26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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