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붙어 있던 엄마 손글씨가 서체로

채민기 기자
입력 2019.11.07 03:00

[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네이버, AI로 만든 글꼴 선봬

"옛날에는 메모장에 할 말을 써서 냉장고에 붙였던 추억이 있어요. 이제는 다 커버린 딸이 어쩌면 잊었을지 모르는 엄마의 글씨체." ('딸에게 엄마가'체)

"야근에 야근하는 직장인으로서 공모 마지막 날 눈치 보면서 틈틈이 적은 글씨입니다. 작고 귀여운 월급을 기다리는 직장인 파이팅!" ('부장님 눈치'체)

디자이너의 '작품'뿐 아니라 평범한 이들의 손글씨도 서체가 된다. 안중근, 박경리, 김훈의 글씨가 서체로 제작 배포된 데 이어 일반인 글씨도 디지털화(化)하는 길이 열리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한글날 '나눔손글씨' 109종을 무료로 공개했다.〈사진〉 공모전을 통해 모은 이용자들의 손글씨를 디지털 서체로 만들었다. 네이버는 2008년부터 한글 서체를 제작·배포해오고 있다. 손글씨 바탕의 서체는 2009년 이후 10년 만이다. 당시엔 공모전 수상작을 놓고 디자이너들이 작업하느라 서체 한 벌 만드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이번엔 공모부터 완성작 공개까지 한 달쯤 걸렸다. AI 기술을 활용한 덕에 시간이 대폭 단축됐다.

한글 서체는 최대 1만1172자까지 디자인해야 한다. 네이버는 OCR(광학 문자 판독)이라는 기술로 이 난관을 해결했다. 이용자들이 손글씨로 256자만 적어내면 AI가 그 특징을 분석해 전체 글자를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올해 공모전에 들어온 손글씨는 2만5000여건. 글씨만큼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음식이 가장 맛있어 보일 메뉴표 글씨체를 고민한다는 영양사, 왼손은 글씨가 안 예쁘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는 왼손잡이, 7번 수술 끝에 떠난 딸을 기억하며 육아일기 쓰던 글씨를 보내온 엄마…. 마음을 담은 손글씨가 디지털의 힘으로 되살아났다.


조선일보 A22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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