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100년, 내가 사랑한 우리말] [7] 그림

화가 사석원
입력 2019.11.07 03:00

화가 사석원

말이 심하게 더뎌 초등학교 입학 1년 전쯤에야 비로소 말문이 트인 탓에 나는 변변한 친구가 없었다. 어쩌다 알게 된 동네 형들을 따라 왕십리 골목길을 몰려다니며 어렵게 배운 단어가 '×새끼'였다. 보는 이에게마다 습득한 새 단어를 우쭐거리며 내뱉었다. 평생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심한 야단을 맞았다. 그 후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혼자 그림 그리는 습관이 일상이 됐다.

말 못 하는 아이는 온종일 그렸다. 욕설과 은둔의 추억이었다. 숙제를 안 해 가 수없이 따귀를 맞았던 초등학생 시절에도 그림 그리는 방구석은 나의 해방구였다. 분명 내 그림은 그 시점에서 출발했다. 어린 눈으로 본 동물·사람·풍경들이 어른이 된 후 내 화면 속에 다시 운명처럼 등장했다. "그림은 그리움의 준말"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기억 속 그리운 낙원을 까치 우는 설날의 색동만큼 화려하게 그려댔다. 환희와 절망의 반복 속에서도 그리기는 늘 설렜다. 그리운 존재를 찾아 알지 못하는 길을 떠도는 방랑자가 됐다. 가끔은 길에 선 채 먼저 걸어간 방랑자들을 생각했다.

박수근의 '나목'은 격동의 시대를 보낸 황폐한 정경과 사라진 아름다운 사람들의 보석 같은 기록이다. 이중섭의 '바닷가의 아이들'은 그리운 가족에 대한 처절한 절규다. 김환기는 쥐 들끓는 뉴욕의 낡은 작업실에서 고향 신안 쪽빛 바다에 점점이 뜬 섬들을 떠올리며 화폭에다 빼곡히 푸른 점을 찍었다. 장욱진의 '가족도'는 할아버지·아버지·고모, 그리고 우리 형제 모두 뒤엉켜 한집에서 살았던 지난 세대의 초상화였다. 이성자는 폭풍의 언덕 같은 남프랑스의 절벽 위 화실에서 한국에 두고 온 자식들을 그림에서라도 만나기 위해 '오작교'를 눈물로 그렸다. 샤갈은 고국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서 생을 마쳤지만, 그의 영혼은 평생 고향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 서성였다.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손을 빼고 다시 붓을 든다. 일생이 방랑이었다. 그리움 때문이다. 그림이 그리움의 준말이라는 명제에 동의한다. 평생 뭔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이 화가다. 사무칠수록 몸부림칠수록 그림은 큰 울림을 갖는다. 그림 그리는 화가들의 애절하면서도 황홀한 숙명이다.


조선일보 A22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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