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홍콩 자리, 한국 자리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9.11.07 03:16
중국 사람들도 자리를 중시한다. 식당에서 상석(上席)은 출입문에서 가장 먼, 문을 마주 보는 자리다. 상석의 오른쪽, 왼쪽 순으로 넘버 2·3가 앉는다. 문에서 가까울수록 하석(下席)이다. 최고 지도부를 뽑는 공산당 대회가 끝나면 당 서열 1위부터 차례로 무대에 등장한다. 2012년 당 대회에서 시진핑·리커창 순으로 걸어 나오는 걸 보고 주석과 총리가 누군지 확인했다. 중국 뉴스는 당 서열 순으로 보도된다. 서열 7위가 나오는 뉴스가 더 비중 있어도 '땡' 하면 무조건 "시진핑"으로 시작한다.

▶엊그제 시진핑 주석이 상하이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만났다. 테이블 상석에 앉아 오른쪽 하석에 앉은 람 장관의 보고를 받았다. 양복 상의 단추를 푼 채 오른손을 휘저으며 뭔가를 지시했다. 람 장관은 다소곳한 자세로 경청했다. "법에 따라 폭력(홍콩 시위)을 진압하고 처벌하라"는 지시였다고 한다. 중국 지방관이 시 주석을 예방할 때는 항상 이런 자리 배치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가 시 주석을 만났을 때 자리가 바로 홍콩 행정장관이 앉은 그 자리였다. 2017년 특사는 대통령 친서를 들고 갔지만 전례 없이 하석에 앉아 '사드 해결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른 특사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김무성 대통령 특사만 해도 시 주석과 동등한 자리였다. 중국은 "새로운 관행"이라고 했지만 이후 베트남 특사도, 라오스 특사도 시 주석과 나란히 앉았다. 상대국 정상의 말을 전하는 특사는 정상급 의전을 받는 게 국제 관례다. 중국에선 한국만 예외다. 시진핑은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이 사람이 한국에만 이런 자리 배치를 하라고 직접 지시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국격 비하를 당한 한국 대통령 특사들은 단 한마디도 항의하지 않았다. 한국에선 상대를 후벼 파는 '독설'로 유명한 대통령 특사는 상석의 시진핑 앞에서 공손히 있었다. 세월호 사고를 "살인 행위"라고 하고 야당에 대해 "도둑놈들" "독재자 후예"라던 사람이다. 만약 한국에서 '지방 장관'으로 취급당했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 정권 사람들은 야당에는 고함치고 삿대질하면서 중국 앞에만 서면 얌전해진다.

▶최근 베이징에서 외교 소식통이 "사드는 한국이 실수한 것" "한국 정부와 국민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귀를 의심했다. '사드 3불'로 주권까지 내줬는데도 '사드 봉합'은커녕 중국이 우리를 무시하고 하대하는 분위기만 짙어지고 있다. 이러다 중국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일보 A34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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