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실패투성이인 슈베르트… 내 삶과 닮았죠"

김경은 기자
입력 2019.11.06 03:01

김태형 금호아트홀 독주회… 슈베르트 정수 담은 곡 연주

앙증맞은 찻잔 두 개가 놓였다. 6년 전 모스크바 유학을 마치면서 "치솟은 루블화 환율에도 큰 맘 먹고 구입한 도자기잔"이다. "3년을 살았는데 겨우 요거 한 세트 샀어요. 러시아 황실에서 쓰던 브랜드라 간직하고 싶었거든요. 깨질까 봐 잘 싸서 조심스레, 하하! 제가 커피를 내려드려도 될까요?" 지난 4일 경희대 서울캠퍼스 음대에 커피 향이 번졌다.

피아니스트 김태형(34)이 이달 7일과 14일·28일 세 차례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곡과 예술가곡을 한 호흡에 푸는 '슈베르트로 가는 길'을 연다. 두 번의 독주회에서 '6개의 악흥의 순간'과 '3개의 소품', 환상곡 '방랑자' 등을 선보이고, 마지막 날 베이스 장세종과 '겨울 나그네'를 들려준다. 열여덟이던 2004년 포르투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그는 타고난 균형 감각과 논리정연한 해석으로 유럽에서도 이름을 알린 연주자다. "기뻐도 잔잔한 사람이 있고 방방 뛰는 사람이 있듯이 슈베르트엔 웃음도 눈물도 녹아 있죠. 어깨 힘 빼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어요. 특히 '악흥의 순간'은 순간순간 드는 감정의 발자취를 죽 스케치한 성격의 소품, '겨울 나그네'는 성악가가 나오기 전에 곡의 색깔을 피아노로 먼저 입혀놔야 하는 작품이라서 매력적"이라고 했다.

지난 4일 만난 김태형은 “나는 사라지고 음악만 남는 순간이 있다. 몇천 번 같은 음을 연습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했다. /오종찬 기자

지난해 9월 서른셋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와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서 러시아의 '피아노 여제(女帝)' 엘리소 비르살라제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를 따라 모스크바까지 갔다. 스승 비르살라제는 "일흔이 넘어서도 누가 옆에서 툭 건드려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1000% 집중해서" 피아노를 쳤다. "바늘 한 땀 비집고 들어갈 틈 없게 강한 집중력을 추구하는 거죠. 음악가는 사라지고 음악만 남는."

뮌헨에서 '성악 가곡 반주 과정'을 전공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솔리스트를 꿈꾸는 음악도가 할 만한 선택은 아니었다. "저는 슈베르트를 잘 치고 싶었어요. 슈베르트 음악은 전부 다 노래여서 가곡을 모르면 접근할 수 없으니까. 피아노곡엔 가사가 따로 없지만 달빛이나 물레 도는 소리까지 음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의 언어를 모르면 맛을 낼 수 없거든요."

그는 무슨 말이든 5초 이상 뜸을 들였고 할 말도 신중히 골랐다. 그만큼 말주변이 없고 과장은 더 없었다. 그래서 "슈베르트와 나는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며 웃었다. "베토벤은 고집 센 작곡가. 치고 나면 에너지가 빠져요. 반면 슈베르트는 소심했고 실패가 잦았고 리스트처럼 스타도 아니었죠." 맑은 영혼인 동시에 불완전했고 '미완성 시리즈'의 대명사가 됐지만 "그래서 인간적"이라고 했다. "노래하듯, 얘기하듯 연주해줘서 고맙다! 슈베르트는 그게 진짜 찬사예요." (02)6303-1977


조선일보 A23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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