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고, 엄마를 떠올리다

정리=신동흔 기자
입력 2019.10.31 03:00

[세 남자가 본 82년생 김지영]

누구나 공감 가능한 이야기지만 여성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몰카' 같은 불필요한 요소 투입
시어머니 모습 상투적으로 묘사

누구는 "집에 있는 아내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고 했고, 누구는 "여자만 힘드냐, 남자도 힘들다"고 했다. 평점 대결이 펼쳐지며 개봉 후에도 남녀 갈등의 장으로 불려나온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70년생, 82년생, 92년생 남자 기자들이 봤다. 같은 남자라도 반응은 세대별로 달랐고, 결혼 여부에 따라 달랐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이른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 이야기. 개봉 닷새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개봉 일주일 만에 원작 소설이 다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예스24 기준)에 올랐다.

영화 속 외로운 거실, 우리 집 닮았네

40대 후반에 아들만 둘 키우는 70년생 기자(신동흔)는 영화를 보다 잠시 자기 집 거실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가족들이 일터로, 학교로 모두 빠져나간 뒤 아내 혼자 덩그러니 남은 공간은 영화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우리도 영화 속 지영이네처럼 살아온 건 아닐까. "아이들 낳고 키우며 함께 나눠온 그 공간이 아내에겐 삶의 굴레였을 수도 있겠구나 되돌아보게 됐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대현(공유)은 아이를 낳은 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에 불안해한다(사진 왼쪽), 영화 속 김지영(정유미)은 결혼과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채 우울감에 빠진 우리 사회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사진 오른쪽). /롯데엔터테인먼트
다섯 살짜리 딸을 '이모님' 손에 맡기고 맞벌이하는 82년생 아빠 기자(채민기)는 "남편은 아내처럼 경력을 단절당하지 않아 행복한가?"란 물음을 던졌다. "전업주부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게 아니듯, 외벌이 가장의 현실은 고단한 밥벌이가 대부분"인데, 영화나 원작에선 이런 남성들의 현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서로를 탓하자는 건 아니다. "우리에겐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위로와 격려가 더 필요한 것 아닐까."

영화에 가장 깊이 동감한 건, 92년생 싱글 기자(구본우)였다. "부모 세대에서 끝난 줄 알았던 여성에 대한 구(舊)시대적 가치관이 결혼과 육아를 기점으로 회사에서, 카페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밀려왔다. 가족을 위해 여성의 희생을 강요했을 때 불행해지는 사람은 여성만이 아니라는 걸 영화는 보여줬다."

"상투적인 인물 많은 것은 흠"

영화는 주인공 지영의 어머니와 할머니까지 올라가는 연대기를 통해 여성들이 겪는 아픔이 매우 오랜 서사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성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를 집어넣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테면 영화 속 몰카 장면이다. 영화가 문제 삼는 주제는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은 여성에 대한 보편적 차별'인데, 화장실 몰카로 회사가 발칵 뒤집히는 장면은 이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것. "변태 성욕에서 비롯된 범죄를 여성에 대한 보편적 차별이란 맥락에 끼워넣었다"(구본우)는 것이다. 다만, "남자들에게 '정치적 신파물'이란 평까지 들은 원작 소설에 비해 남성을 비(非)정상적으로 묘사한 사례는 줄어든 것 같다"는 데 공감했다.

주인공이 겪는 부조리를 강화하느라 시어머니 모습은 상투적으로 그려졌고, 친정아버지를 1980년대 TV 주말 드라마에나 나왔을 케케묵은 가장처럼 그렸다는 아쉬움도 나왔다. "딸들은 쏙 빼놓고 아들 보약만 지어 오는 가장의 모습에선 27년 전 드라마 '아들과 딸'이 떠올랐다."(채민기) 광복과 6·25를 겪은 외할머니와 청계천에서 봉제 일을 한 친정엄마 이야기까지 끌어들인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20세기 자본주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마르크스가 '자본론' 쓰던 시절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주제의식은 알겠는데 요즘 관객들이 얼마나 공감할지는 미지수다."


조선일보 A21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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