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은 뒤로 빠지고, 美가 앞장… 부메랑으로 돌아온 '지소미아 파기'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김진명 기자
입력 2019.10.28 03:00

美국방·국무부 차관보, 일본 방문해 "한국은 지소미아 유지하라"
정부, 지소미아 지렛대로 '美 중재' 바라다가 한미동맹 위기만 초래
美안보라인 내달 방한… 외교가 "靑에 결정 번복할 명분 주려는 것"

청와대가 지난 8월 22일 파기하겠다고 발표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 MIA·지소미아)은 오는 11월 23일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우리 정부가 당초 결정을 뒤집어 그 효력을 연장할 수 있는 시간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한·미·일 삼각 협력을 중시해 온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전(全)방위로 높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6일 "지소미아는 한·미·일 안전 보장에 매우 이롭다"며 "지소미아로 돌아올 것을 한국에 촉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달 5일 방한할 예정인 그는 "경제적 과제가 안보 과제로 파급돼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지난 7월 일본이 대한(對韓) 수출 규제 강화를 발표한 것이 8월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로 이어진 데 대해 근본적 회의감을 나타낸 것이다. 그에 앞서 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도 25일 "지소미아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이버 공격 등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지소미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명확하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가 없어도 미국을 통해 한·일이 정보를 간접적으로 주고받는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를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해왔지만, 미국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존 힐 미국 미사일방어청장은 지난 7일 VOA 인터뷰에서 "지소미아가 유지될 때만 최적의 미사일 방어를 제공할 수 있다"며 "미·일, 한·미 간의 양자 정보 공유 체계로도 방어 체계 운용은 가능하지만 최적의 방법은 아니다"라고 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26일(현지 시각) "지소미아 파기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서 미국은 청와대가 기존의 방침을 철회할 수 있는 '명분'을 최대한 주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5일로 예정된 스틸웰 차관보의 방한과 다음 달 중순으로 예상되는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의 한·일 동시 방문도 청와대가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번복할 명분을 주려는 사전 정지 작업이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여전히 일본이 먼저 수출 규제를 풀어야만 지소미아 연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5일 "원인 제공이 일본의 보복 조치에 있는데 지소미아 중단 결정을 일방적으로 없었던 일로 한다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의 '원칙론' 뒤에는 지소미아와 얽혀 있는 수출 규제, 더 근본적으로는 징용 배상 문제를 시한 내에 풀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당초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를 '카드'로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였다. 작년 가을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발표에 이르기까지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자, 청와대 핵심부는 지소미아 파기를 '지렛대'로 삼기로 했고, 이후 미국에 '중재'역할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태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발표한 것은 미국의 (중재) 역할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된다"며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바람직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소미아 파기 발표 이후의 전개는 예상과 달랐다. 미국은 한국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며 줄기차게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했다. 일본은 지소미아 종료를 막기 위해 새로운 협상에 나설 뜻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4일 이낙연 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회담 후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이 국가 간의 약속을 준수해야 양국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며 징용 문제가 풀려야 한다고 명확히 말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9일 "지소미아가 종료돼도 일본의 방위에 직접적 지장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결국 한국만 지소미아 종료 시한에 쫓기는 '자승자박(自繩自縛)' 상태가 됐다는 지적이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으면 일본은 물론 미국에서도 외교적 후폭풍이 일어 한국이 양쪽에서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총체적 파국을 맞기 전에 정치적 의지를 갖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징용 문제를 풀 수 없다면 일단 한·일 간 공식 협의체 출범이라도 해놓고, 그것을 명분으로 지소미아를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태용 전 차장은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유보하고 미국이 역할을 해서 한·일 간 문제를 풀 수 있는 체계화된 대화의 장을 열도록 하면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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