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경찰의 날' 유감

박은호 논설위원
입력 2019.10.22 03:16

할리우드 스타 제인 폰다(81)가 미 워싱턴DC 의사당 앞에서 11일 경찰에 체포됐다. 국제 환경 단체 회원 10여 명과 함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이었다. 현장 출동한 경찰이 그의 양손에 흰색 플라스틱 끈으로 된 수갑을 채워도 고분고분했다. 의사당 계단에서 구호를 외치던 다른 시위대도 경찰이 등장하자 군말 없이 제재에 따랐다. 반항 낌새라도 보였으면 경찰관 허리춤에서 봉(棒)이나 권총이 즉각 튀어나왔을 것이다.

▶전 세계 경찰의 공통적 상징 가운데 하나가 경찰봉이다. 범죄자를 잡고 자신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공권력 도구다. 30~90㎝ 다양한 길이에 재질도 나무, 철재, 플라스틱, 상아로 된 것까지 있다고 한다. 1829년 근대 경찰 제도를 도입한 영국이 런던 경찰에게 처음 경찰봉을 지급한 뒤 미국 등지로 퍼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포졸에게도 육모방망이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 경찰은 집회·시위 현장에선 무장해제된 거나 마찬가지다. 경비 경찰은 알루미늄으로 된 3단 경찰봉을 휴대하지 못한다. 시위 진압용으로 쓰는 플라스틱봉 역시 "경찰차에 보관할 뿐 휴대 금지"라고 한다. 광화문 일대 경비 경찰에게 "돌발 사태가 벌어지면 어떻게 방어하나"고 물으니 "맨몸으로 제압한다. 평소 육체 단련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육탄 방어'가 공권력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18일 미 대사관저 담을 타 넘은 친북 단체에 현장에 있던 의무경찰 세 명의 육탄 방어는 코미디 같은 모습으로 허물어졌다.

▶서울 종로구 경찰박물관에는 온갖 경찰 장비가 전시돼 있다. 시위 진압용 방패, 권총, 호루라기, 수갑, 가스 분사기, 테이저건, 손전등까지 없는 게 없다. 그런데 유독 경찰봉만 없다. 박물관 측은 "원래는 전시돼 있었지만 최근 전시에서 뺐다"고 한다.

▶경찰봉 없앤다고 '인권 경찰'이 되고 민주 경찰이 되는 게 아니다. 경찰봉보다 더한 것을 쓰더라도 공권력을 제때에, 제대로 써야 법 질서를 지킬 수 있고 그래야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지킬 수 있다. 현 정부 들어 공권력 행사를 포기하는 바람에 경찰이 당한 수모가 한둘 아니다. 민노총 폭력 시위 현장에서 노조원에게 맞아 경찰관 치아가 부러지고, 시위대가 경찰 보는 앞에서 공무원 뺨을 보란 듯 때리고, 경찰서 안마당에서 기자 폭행이 벌어졌다. 경북 성주 사드 현장에선 경찰 차량이 민간인에게 검문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고도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나. 그런데 어제가 74회 '경찰의 날'이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A34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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