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에도 노쇼 대신 사인회… '필드 수퍼맨' 켑카의 품격

제주=민학수 기자
입력 2019.10.21 03:00
"수퍼맨이란 별명처럼 다부지게 생겼네요."

"세계 1위 사인을 받으니 영광이긴 한데 다쳤다고 하니."….

지난 19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CJ컵 3라운드 경기가 한창이던 제주도 서귀포시 클럽 나인브릿지에선 낮 12시 15분쯤 예정에 없던 세계 랭킹 1위 브룩스 켑카(29·미국)의 팬 사인회가 열렸다.

브룩스 켑카(왼쪽)가 CJ컵 3라운드가 열린 19일 팬 사인회에 참석한 모습. 무릎 부상으로 이번 대회 3라운드를 앞두고 기권한 그는 출국하기 전 20여 분 동안 팬 사인회를 자청했다. /JNA 골프
무릎 부상으로 3라운드 기권을 선언한 그가 "대회를 뛸 수 없게 돼 너무 미안한데 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고 PGA투어와 대회 후원사인 CJ에 먼저 질의를 했다고 한다.

검은색 후드 티에 모자를 거꾸로 쓴 켑카가 갤러리 플라자에 나타나자 팬들이 금세 에워쌌다. 평소 잘 웃지 않는 켑카는 이날 어린이 팬들과 환하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대회 기념 모자와 홀 깃발 등 기념품을 들고 사인을 받으려는 팬들 발길이 계속 이어지면서 사인회는 20여분간 이어졌다.

그는 전날 2라운드 3번 홀에서 젖은 바닥에서 미끄러진 뒤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라운드를 마친 뒤 관계자들 안내로 인근 대학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를 찍은 후 미국 주치의에게 전송했고, "상태가 좋지 않으니 귀국해서 몇 가지 검사를 더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건네받았다. 켑카는 지난 9월 왼쪽 무릎 수술 후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있다. 켑카 측은 19일 오후 3시쯤 중국을 거쳐 LA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급하게 확보했다. 하지만 공항에 가기에 앞서 팬 서비스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리를 절룩이며 켑카가 카트를 타고 떠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켑카는 이후 PGA투어를 통해 "좋은 인연이 있는 제주로 내년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내용의 긴 메시지를 다시 전했다.

켑카는 엄청난 파워와 골프 실력에 비해 세리머니가 화려하지 않아 너무 진지하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이날 팬들에 대한 에티켓은 '필드의 수퍼맨'다운 품격을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다.

지난여름 한국 팬들을 '집단 멘붕(멘탈 붕괴)'에 빠트렸던 포르투갈의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이탈리아 유벤투스)의 노쇼 사태와 대비된다고 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조선일보 A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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