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포용 국가'라는 거짓말

정석우 사회정책부 기자
입력 2019.10.19 03:14 수정 2019.10.20 20:42
정석우 사회정책부 기자

일제강점기인 1916년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격리된 6000여 명의 한센인(나병 환자)은 세 번 죽는다고 했다. 일명 '문둥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전남 고흥군 서남쪽 끝자락과 마주한 4.42㎢의 작은 섬에 강제 수용되면서 이미 한 번 죽은 것이다. 가족을 못 본 채 쓸쓸한 죽음을 맞는 게 두 번째고, 일본군 해부 실험 대상이 돼 부검대에 오르면서 세 번 죽는다고 했다.

격리 시설이었던 소록도자혜의원은 해방 후 돌봄 개념의 국립소록도병원으로 개칭했다. 2009년 섬과 육지를 잇는 소록대교가 생기면서 이 섬은 낭만의 명소가 됐다. 어디까지나 가끔 섬을 찾는 사람들 얘기다. 498명의 소록도병원 한센인들에게 섬은 여전히 고립의 은거지다.

거듭된 외과의사 채용 공고에도 끝내 지원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난 주말 소록도병원을 찾았더니 내과의사와 안과의사(이비인후과 겸직)도 공석이었다. 대체복무 중인 공중보건의를 뺀 정규 의사 정원 5명 중 2명만이 132개 병상을 책임지고 있었다. 의사면허 소지자(8만3147명)의 절반가량인 4만602명의 이 분야 의사 가운데 국립병원 의사 3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십수 년간 활자화되거나 전파를 타지 못했던 사실이다.

병원은 올 들어 필요한 의사를 뽑기 위해 처우나 기준을 개선해달라고 상급 기관인 보건복지부에 요구했지만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복지부는 포용 국가를 내세운 정권의 포용 국가 주무부처로 내년부터 나라 예산을 가장 많이 쓰는 부처가 된다.

한센인들은 뭍에 나와서도 고립됐다. 평균 76세인 한센인들은 봄이면 경남 하동으로 벚꽃 나들이를 떠나지만, 인적이 드문 곳을 찾지 못하면 버스 안에서 창 너머로 물끄러미 꽃과 뭍사람을 구경해야 했다. 가을 단풍 구경까지 합쳐 1년에 고작 두 번인 나들이를 앞두고 병원 직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손가락이 없어 젓가락을 쓸 수 없는 한센인들이 포크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차릴 수 있는 식당을 찾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산하 기관 직원들이 진땀을 빼는 동안 상급 기관은 다른 데 열을 올렸다. 보건복지부는 16일 소록도병원 한센인 치매 예방 관리를 전담하는 한울센터를 개소했다고 홍보했다. 대통령 공약인 치매국가책임제를 구현하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센터장이 정규 의사가 아닌 공중보건의라는   사실은 고백하지 않았다. 정작 포용받지 못하는 한센인을 포용 국가 홍보 수단으로 악용한 셈이다.

이상한 경제 실험을 한다며 경제를 망쳐놨으면 돌봄이나 보훈 같은 포용이라도 잘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 7월 서울 관악구의 40대 탈북 여성과 6세 아들이 굶어 죽었다. 대통령의 많은 슬로건이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포용 국가'구호만큼 거짓말도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A30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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