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고집불통 대통령을 보는 고단함

김신영 경제부 차장
입력 2019.10.19 03:15 수정 2019.10.19 15:45

'조국' 물러나고 나서도 쪼개진 민심 수습 않는 대통령
국민에 오히려 "공정 생각하자" 그 오만한 아집에 지친다

김신영 경제부 차장

투수 류현진 때문에 한국 야구팬이 편애하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지난주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했다. 선발투수 클레이튼 커쇼가 몸에 안 익은 불펜으로 등판해 홈런 두 방을 맞고 무너졌다. 커쇼는 수년째 '가을 야구' 때 부진해 왔고, 그래서 많은 팬은 그가 나올 때 이미 불길함을 느꼈다. "아니, 왜? 제발 바꿔줘!"

한 586세대 선배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법무부 장관 조국' 임명을 강행할 때 비슷한 심정으로 절규했다고 한다. "아… 제발, 안 돼. 하지 마!" 문 대통령을 지지해온 그는 좌파 진영의 몰락과 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고집을 거뒀으면 하고 소망했다. 대통령은 반대로 갔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이 주 초 그의 사퇴로 한 매듭을 짓고 나서, 대통령이 이제라도 쪼개진 민심을 수습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이후 나오는 말과 글은 대통령의 고집불통 정신세계만 드러낼 뿐이다. 온 가족이 연루된 부도덕한 행태 탓에 물러난 조국을 "뜨거운 의지와 이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는 자세"라고 여전히 두둔하는 대통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문 대통령은 국민과 잘 소통하기로 약속하며 당선됐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의 마음이 민심과 닿았다고 여기는 국민은 적다. 오히려 '문재인 (머릿속) 나라'는 그 성벽이 너무나 견고해서 다른 의견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세상에선 상식을 지닌 자라면 낯 뜨거워서라도 못 할 말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선포된다. 이달 초 조국을 두고 국민 분열이 극에 달했을 때 "국민의 뜻이 (검찰 개혁) 하나로 모였다"고 평가하는 식이다. 한 친구는 "온 국민이 뻔히 지켜본 사실을 혼자만 못 본 것처럼 말하는 대통령이 좀 무섭게 보였다"고 했다.

조국 사퇴 후에도 고집스러운 언행은 멈추지 않는다. "갈등을 유발해 송구스럽다"란 말로 사과를 갈음한 대통령은 갑자기 더 긴 문장으로 언론의 성찰을 촉구했다. 16일엔 조국 편을 들어온 법무부 차관과 검찰국장을 불러다 "우리 차관" 운운하며 '쇼' 같은 사진을 찍었다. 조국 일가 수사가 진행 중인데 대통령이 지시하고 검찰 책임자는 절절매며 플러스펜으로 '말씀'을 받아 적는다. 누가 봐도 부적절하고 어색한 모습인데 청와대만 모르나 보다. 조국 사태를 대통령이 "공정의 가치,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할 소중한 기회"라고 평가하는 건 어떤가. 글쎄… 공정·언론의 본질을 이런 생난리를 치르면서까지 '깊이 생각'하고픈 국민이 과연 있을까.

다저스의 로버츠 감독은 커쇼를 고집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변명했다. "잘 풀릴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랬다." 한 회사 후배는 이 인터뷰를 보고 분개하며 말했다. "접신(接神)이라도 했나. 그 많은 데이터를 두고, 느낌이라니." 문 대통령의 고집도 비슷한 수준이다. 그의 세상에선 검찰 개혁은 언제까지나 조국의 작품이고, 한국 일자리는 늘 기분 좋게 늘어나며, 미사일과 욕설을 쏴대는 북한은 괜찮은 나라다. 객관적 근거나 전문가 조언을 수렴해서가 아니다. 그냥 그렇다고 믿어버린다.

야구에 지고 난 후 팬들은 고집스러운 감독 좀 욕하다가 일상으로 돌아간다. 맘에 정 안 들면 응원 팀 바꾸면 그만이다. 자기편만 챙기는 고집불통 대통령을 둔 국민은 퇴로(退路)가 없어 고단하다. 친구·동료가 쪼개져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가 된다. '단톡방'이 박살 나고 밥 자리가 험악해진다. 한 친구는 나에게 이런 칼럼은 쓸모가 없다며 쓰지도 말라 했다. 대통령은 이미 다른 쪽 얘기는 안 듣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한다. 맞는 말처럼 들려 허무하다.



조선일보 A31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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