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 대사관서 데모해야 美 바뀐다"던 특보 말대로 되나

입력 2019.10.19 03:20

친북 단체인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어제 서울 중구 미국 대사관저 담을 넘어 침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사다리로 대사관저 담을 넘고 들어가 '미군 지원금 5배 증액 요구 해리스(주한 미 대사)는 이 땅을 떠나라'라고 적힌 피켓 등을 펼쳤다고 한다. 이들은 경찰에 연행되면서도 "미국은 우리나라를 나가라" "미군 철수하라"고 했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김정은 만세" 구호를 외치더니 미 대사관저 담을 넘는 일까지 벌인 것이다. 미 대사관저 점거는 반미 시위가 한창이던 1980년대에나 벌어졌던 일이다. 관저에는 경비를 서던 경찰들이 있었지만 "다칠까 봐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고 했다.

이 단체는 얼마 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을 점거하고 반미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 결성을 주도했다. 서울 곳곳에서 김정은 답방 환영 홍보 활동을 벌이며 '김정은 만세'를 외쳤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를 지속적으로 겁박해 공개 강연을 막기도 했다.

이들은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소수 일탈 그룹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을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2002년 미선·효순양 사건이 재연될 수도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경제 실패, 남북 실패, 조국 사태 등으로 좌파 진영이 궁지에 몰려 있다. 북한은 미국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가로막고 있다고 연일 비난하고 있다. 최근 미·북 협상 결렬 직후 북한 노동신문은 "남조선 당국이 대미 추종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이 날로 가중되는 침략 전쟁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미국 때문에 남북 쇼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은 현 정권 내부에서도 크다. 대통령에게 영향력이 크다는 문정인 특보는 "남북 관계에 가장 큰 장애물은 유엔군사령부"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민이 데모해야 (미국이) 바뀐다"고 했다. 이 정권 핵심들이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 속생각은 어제 미 대사관저를 침입한 친북 단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이 와중에 트럼프 미 대통령은 주한 미군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한국민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이미 지소미아 파기 이후 한·미 동맹의 균열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중립을 지켜오던 한국군 독도 훈련 문제에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누군가 불을 댕기면 반일(反日)에 이어 반미의 불이 타오를 수 있다.

지금 한국은 내우외환에 처해 있다. 경제는 어려운데 국민은 분열돼 있고 정권은 신뢰를 잃었다. 밖으로는 우방이 하나라도 있는지 알 수 없는 처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미 시위까지 벌어지면 안보와 경제 모두에 설상가상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미 대사관저 침입 사건을 경시하지 말고 분명히 선을 그어 반미의 불길이 번지는 것을 초기에 차단해야 한다.



조선일보 A31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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