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 고개 숙였나" "유시민 주장만 일방 수용하나"...유시민發 논란에 KBS 기자들 반발 확산

박성우 기자 권오은 기자
입력 2019.10.10 17:20 수정 2019.10.10 18:13
KBS ‘외부 조사위 구성’ 조치에 내부 반발 확산
KBS기자협회 긴급운영위 개최…집단행동까지 거론
"회사 측이 유시민과 상의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어"
기자들 "유시민만 믿고 기자 안 믿나" "여권에 고개를 숙였다"’
언론 교수들 "조사위 구성 근거 밝히지 않으면 ‘폭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을 계기로 조국 법무부 장관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자산관리를 맡아온 한국투자증권 PB(프라이빗 뱅커) 김경록씨의 KBS 인터뷰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 KBS가 별도의 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하자 KBS 기자들의 내부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10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KBS 기자들은 이날 오후 5시30분 KBS기자협회 긴급운영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긴급운영위에서는 이번 사안에 대한 KBS 기자들의 의견을 모은 뒤 성명서 발표 등 추후 대응책을 논의할 방침이다. KBS 관계자는 "기자의 개별적인 입장보다는 단체의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며 "한국기자협회에 문제제기를 해서 성명서 발표 등 공동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한국방송공사(KBS) 사옥. /조선DB
조 장관 관련 취재를 총괄해온 A 사회부장은 앞서 이날 오전 사내게시판에 김씨 인터뷰 전문을 공개하면서 보직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반장 B기자 등 사회부 법조팀 기자들도 "유 이사장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을 담고 있는데 회사는 왜 민형사상 조치를 망설이고 있나" "회사 측 조치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KBS는 이날 오후까지 이번 사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유시민은 믿고 기자들은 못 믿나" 일선 기자들도 반발 확산
법조팀을 포함한 사회부뿐만 아니라 KBS 일선 기자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다음주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회사가 지나치게 정권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가 지난 8일 조국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씨의 증거인멸을 도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국투자증권 직원 김경록씨의 육성 인터뷰를 공개했다. /유튜브 캡처
KBS C기자는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에 "회사 측의 결정은 담당 기자들과 논의 없이 사장, 본부장 등 임원진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부에서 ‘취재한 기자는 뭔가’ ‘여권에 고개를 숙였다’ ‘회사가 (취재 기자를) 보호를 못할 망정 뒤통수를 쳤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C기자는 "간부 중에도 조사위 구성 결정에 대해 동조를 안 하는 사람들이 있어, 성명서 발표 등 집단행동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했다.

D기자는 "기존에도 일선 기자 사이에서 리포트(방송기사)를 올리면 이유를 모른 채 뒤로 밀린다는 얘기가 많았다"며 "내부에서 사측이 조사위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유시민은 믿고, 기자들을 못 믿는다’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E기자는 "조국 사태가 터진 뒤, 기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있었다"며 "예전 파업을 시작하기 전의 분위기와 비슷한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F기자는 "사내 분위기가 완전히 엉망이 됐다"며 "사실상 취재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들려 집단 행동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했다.

G기자는 "녹취 내용을 전부 들어보면 결코 유 이사장처럼 말할 수 없다는 것 알지 않느냐"며 "보도를 안 한 것도 아니고 인터뷰 내용 중 무엇이 중요한지는 각 언론사가 판단할 일이다. 검찰에 취재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 아닌가"라고 했다.

◇언론계 "정권 인사 한마디에 조사위 구성하면 어느 기자가 받아들이나"
언론학계에서는 KBS 사측의 조치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재경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KBS가 보도 관련 조사위를 구성하는 이유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정보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외부 압력 탓인지를 구성원에게 먼저 설명해야 한다"며 "기자들에게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우선 조사위부터 구성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외부 전문가를 불러서 조사위부터 꾸리겠다는 것은 KBS가 자기 기자들은 못 믿겠다고 스스로 인정한 꼴 아닌가"라며 "최소한 내부에서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지부터 따져보고, 합의가 안 될 것 같으면 그때 조사위를 구성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했다. 이어 "유 이사장처럼 정권과 가까운 인사의 한마디에 조사위를 구성하는 모양새가 되면, 어느 기자가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고 했다.

◇사회부 기자들 "인터뷰 검찰에 넘겼다는 건 ‘거짓선동’"
A 사회부장은 앞서 이날 오전 사내게시판에 인터뷰 전문과 함께 입장문을 올리며 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김씨의 인터뷰 내용을 검찰에 유출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자산관리인의 피의사실 즉, '증거인멸' 혐의를 검찰에 물은 게 아니다. 자산관리인이 말한 장관 부인의 의혹을 검찰에 물은 것"이라며 "검찰에는 당시 우리 보도가 별반 새로울 게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취재 과정에서 검찰이 인터뷰한 사실 자체를 알아챘다고 해서 그걸 마치 기자가 인터뷰 내용을 통째로 검찰에 넘긴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억지고 ‘거짓 선동’"이라고 했다.

그는 "진영의 이익과 논리를 대변하는 방송과 언론이 때에 따라선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한 개인의 인생을 제물로 해서는 안 된다"며 "한 진영의 실력자가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면서 ‘시대정신’을 앞세운다면 그건 언제든 ‘파시즘’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법조반장 B기자도 이날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유 이사장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을 담고 있다"며 "회사는 왜 민형사상 조치를 망설이고 있나"라고 했다. 이어 "법조팀을 취재에서 배제한다는 조치는 사전에 어떤 논의도 없었는데 어떤 과정으로 결정된 것인가"라며 "이는 유 이사장의 주장을 회사가 수용한다는 뜻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데, 그런 뜻이냐"고 했다. 그는 "유 이사장은 (조 장관) 사건 초기 최성해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를 해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람"이라며 "그 사람의 일방적 주장을 회사가 수용한 것인가"라고 했다.

B기자는 "우리가 알지 못하던 회사의 공식 입장문이 나가던 시각, 매우 공교롭게도 유 이사장이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KBS가) 이런저런 조치를 해야 한다고 언급한 내용이 회사 입장문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결정은 사회부장도 사전에 모르던 것으로, 회사 임원진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누군가 유 이사장에게 이런 조치를 미리 알려줬거나, 유 이사장과 상의를 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 유시민의 유튜브 의혹 제기에 KBS, 법적 대응 발표 하루 만에 ‘조사위 구성’
논란은 지난달 10일 KBS와 인터뷰한 김씨가 지난 8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 KBS 인터뷰 사실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유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에선 김씨의 KBS 인터뷰 내용이 사전에 검찰에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KBS는 곧바로 "취재원의 인터뷰 내용을 유출하지 않았다"며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러자 유 이사장은 다음날인 9일 라디오 방송과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양승동 KBS 사장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제가 양 사장이라면 서둘러서 해명하기 전에 김씨 인터뷰 영상과 내보낸 세 꼭지의 뉴스를 보고 점검해 볼 것 같다" "CEO(최고경영자)가 나서 공신력의 위기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KBS는 같은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외부 인사를 포함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최근 의혹이 제기된 조 장관 및 검찰 관련 취재·보도과정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또 '조 장관 및 검찰 관련 보도를 위한 특별취재팀'을 구성하겠다고도 했다. 이는 지난 두 달간 조 장관 의혹에 대해 취재해온 법조팀 기자들을 사실상 조 장관 관련 보도에서 배제하겠다는 조치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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