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산을 닮다

정상혁 기자
입력 2019.10.10 03:00

스웨덴 화가 안드레아스 에릭슨, 내달까지 아시아 첫 개인전 개최

새가 창문에 부딪쳐 죽을 때, 새는 자연의 투영(投影)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새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비친 풍경이고, 그곳을 향해 돌진하는 자기 자신이다.

신작 회화 '설악산'(2019). 서울 소격동 학고재 본관뿐 아니라 학고재 청담에는 소형 회화 '덧없는' 연작 15점이 걸려 있다. /학고재
스웨덴 화가 안드레아스 에릭슨(44)은 16년 전 작업실에서 목격한 새의 죽음을 통해 "회화라는 환영에 내재된 자연과 문명(나)의 관계"를 생각했다. 그는 전자파에 통증을 느끼는 병을 얻어 귀향했고, 2001년부터 스웨덴 북부 시네쿨레산 숲에서 살고 있다. "자연의 우연성과 계절에 따른 색채 변화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그는 아시아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소격동 학고재 전시장에 숲속 작업실을 재현해놨다. 실크스크린 연작 4점이 창문 형태로 전시장에 걸려 있다. 등고선처럼 물결치는 선의 연쇄가 창밖처럼 보인다. 청동으로 만든 새 조각 5점도 있다. 창문에 부딪쳐 죽은 새다. 2011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북유럽관 대표 작가로 참여했는데, 새 연작은 당시 선보인 것들이다.

어느 영토를 조감(鳥瞰)하듯 그림이 산을 닮아 있다. 최신작 '설악산' '세마포어 지리산' '세마포어 한라산' '세마포어 가리왕산' 등 한국 전시를 기념해 한국의 산 이름을 붙인 대형 회화가 그러한데 다만 "실제 산이 아닌 산의 질감과 색채만 빌려온 추상화"다. "자연은 매우 정확한 체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연성을 포용하는 세계다. 춤출 때 계산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지듯, 생각이 너무 많으면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무의식에 몸을 맡긴 채 붓질하면 좋은 그림이 나온다." 스칸디나비아 화가의 그림에서 동양적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흙에서 비롯된 것이 흙으로 돌아가듯, 풍경은 주제이자 재료다. 대형 수공예 태피스트리(직물) '바이젠시 no6'가 전시장 입구에 있다. 스웨덴 곳곳에서 수집한 오래된 실을 엮어내자 "지역과 기후에 따른 자연의 색"이 올라왔다. 그 앞에 실제 작업실 앞 '두더지 둔덕'에서 본뜬 동명의 청동 조각을 놨다. "화가는 흙 위에서 두더지는 흙 안에서 작업한다. 유랑하듯 복잡한 세계에 길을 낸다." 회화·조각·동판화 등 27점의 전시작은 그러므로 자연으로 이끄는 지도(地圖)다. 11월 3일까지.


조선일보 A20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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