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까지 독학했다… "온갖 것 예술로 만드는 나는 잡종"

정상혁 기자
입력 2019.10.09 03:00

[김윤철]
과학·예술 넘나드는 설치미술가
수학·물리·전기 등 활용한 작품 내달 17일까지 서울서 개인전

"딱 봤을 때, 미추(美醜)를 파악하기도 전에, 저 안에 뭔가 있다고 눈치채는 순간, 우리는 그 물질과 미적으로 조우한다."

설치미술가 김윤철(49)씨가 전시장에 놓은 2m 높이 투명 원통은 그 하나의 예다. 원통 안에서 사금(砂金) 같은 자성 물질이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출렁인다. 출렁임은 정체불명의 상형문자처럼 떠오르다 곧 의미 밖으로 사라진다. 설치작품 'Triaxial Pillars II' 앞에서 관람객은 오래 눈길을 빼앗긴다. "노을을 바라볼 때, 노을이 의미하는 것은 없다. 내 작품 역시 뭔가를 떠올리는 계기를 건넬 뿐이다."

김윤철 작가가 거대 이무기같은 설치작 'Croma' 앞에 섰다. "나는 수학과 물리와 전기 등 온갖 것을 다루는 예술가"라며 "쉽게 말해 잡종"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온갖 물(物)을 값비싼 미(美)로 변환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는 일종의 연금술사라 할 수 있다. 서울 바라캇컨템퍼러리에서 11월 17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은 그 실험실처럼 보인다. 뮤온 입자 검출기('Argos')가 공기 중 뮤온 입자를 검출할 때마다 빛을 번쩍이고, 샹들리에처럼 늘어진 모세관('Impulse')으로 그 신호가 전달돼 내부의 물이 파동을 일으키는 등의 작품 13점이 진열돼 있다. 물질의 성질을 연구해 예술로 전환하는 독창성을 인정받아 2016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콜라이드 국제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실제 연금술도 공부했다. "연금술에서 말하는 불·물·흙·공기 등 4원소를 이해하려 화학을 독학했다. 흙이건 쇳가루건 뭐든 만지고 연구했다."

과학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지만, 그의 원래 영토는 전자음악이었다. 음대를 졸업했고 MBC 드라마 '사춘기' 등의 주제곡 작곡에 참여하기도 했다. "백남준 작품을 보고 TV·통신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하는 새로운 예술에 흥미가 생겼다"고 했다. 1999년 독일로 넘어가 쾰른미디어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처음엔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한 비주얼 아트 방면에서 활동했으나 "전원을 끄면 흰 벽뿐인 허무감" 때문에 "실제로 만져지는 물질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섰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물질 실험이고, 과학과 구별되지 않는다. "물질의 근원을 탐구하는 사람이 예술가이고 과학자"라며 과학과 미술을 동일선상에 놨다. "재료 공학을 공부하며 부딪힌 질문 대부분이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고 했다. 일종의 젤리 형태인 하이드로젤을 투명 삼각형 틀에 욱여넣고 300㎏ 압력으로 눌러 놓은 작품 'Coptic Light'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아주 강한 압력을 받으면 이 물질은 찬란한 색(色)을 터뜨린다. 아름답지만 엄청난 스트레스 상태다. 시련이 꽃을 피우기 위한 조건이라는 은유…."

2015년 귀국해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 연구책임자를 3년간 맡았다. "소설가, 수학자, 건축가 등을 불러다 서로 토론하고 퍼포먼스를 벌였다. '우주'라는 같은 주제를 놓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초(超)경계는 삶의 태도다. 다른 영역을 적극 불러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초경계'였다. 최근 이사한 인천 영종도 작업실 근처 이웃들이 작품 설치를 자발적으로 도왔기 때문이다. "옆집, 옆옆집 사람들이 전선도 까주고 납땜도 해주고…. 직업도 전공도 다른 이들의 품앗이였다. 전문가끼리 모일 때보다 갈등도 덜 했다."


조선일보 A19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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