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 선생이 지하에서 기뻐할 일" 일제 탄압에도 조선어사전(광복 이후 '조선말 큰사전'으로 출간됨) 편찬한 주역

김성현 기자
입력 2019.10.09 03:00 수정 2019.10.10 10:09

영화 '말모이' 실제인물 중 1人… 한글날 맞아 이극로 전집 발간
"월북으로 한국서 관심 부족"

"한글 창제 이래 초유의 금자탑(金字塔)."

일제 강점기인 1940년 3월 8일 자 조선일보 2면에 대서특필된 기사 제목이다. 조선어학회에서 추진하는 조선어사전(광복 이후 '조선말 큰사전'으로 출간됨) 편찬 사업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소식이었다. 이 사전 편찬 작업을 극화(劇化)한 영화가 올 초 개봉한 '말모이'다. 당시 사전 편찬 작업을 조선일보는 실시간으로 지상 중계했다. 이 기사에서 "그저 제 힘이 닿는 데까지 하루라도 빨리 끝내겠다"고 결의를 다졌던 국어학자가 이극로(1893~1978)다. 이극로는 한 해 전인 1939년 인터뷰에서는 "생전에 완성시키려고 애쓰다가 이루지 못한 고인 주시경 선생도 지하에서라도 기뻐하실 줄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사전 완성은 중단됐고, 이극로를 비롯한 협회 회원들은 함흥형무소 등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았다.

이극로(왼쪽)가 참여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소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1940년 3월 8일 자. /조선일보DB
'말모이'의 실제 모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극로의 전집(4권·소명출판)이 올해 한글날을 맞아서 출간됐다. 이극로는 1920년대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로 유학을 떠나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3년 유럽 최초로 베를린에서 조선어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광복 후 1948년 월북한 뒤 북한 내각 무임소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번 전집에는 자서전인 '고투사십년(苦鬪四十年)'과 함께 이극로가 발표한 저술과 기고문, 관련 자료들을 한국·북한·유럽편으로 나눠서 실었다.

1920년대 이극로가 한국어 강좌 개설을 위해 독일 정부·대학 측과 주고받은 공문과 서신도 이번 전집에 포함됐다. 이극로는 1925년 타자기로 직접 작성한 서신에서 "한국어는 2000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동아시아의 세 번째 문화어이며, 문자가 독특해 실용적 측면 외에도 언어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월북 이후 이극로가 북한 편에서 한국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던 정치 선전문도 전집에 포함됐다.

편찬을 맡은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은 독일·프랑스·영국·러시아 등의 문서보관소와 국립도서관에서 이극로 관련 자료들을 입수했다. 조 소장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조선어학회의 대표 격이었던 이극로는 월북 문제로 인해 한국에서 관심과 조명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면서 "그의 문화사적 업적을 재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A19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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