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8] 황소 앞에서 배 부풀리는 개구리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19.10.09 03:10
김규나 소설가
나는 비명을 질러 선생님의 안경알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그녀의 눈썹에 피가 엷게 번졌다. 알이 없어진 안경 속에서 눈을 깜빡거리던 선생님은 더듬거리며 뒷걸음질치다 결국 흉한 몰골로 울기 시작했다. 내 등 뒤의 패거리들은 불안에 떨며 입을 다물었고 의자 밑에 몸을 숨겼다. 이를 덜덜 떠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의자들을 밟고 뛰어가서 자기 엄마에게로 도망쳤다.

ㅡ귄터 그라스 '양철북' 중에서.

어른의 세계란 혐오스러울 뿐이라고 판단한 오스카는 세 살이 되었을 때 스스로 성장을 멈춘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생일 선물로 받은 양철북을 두드리는 것. 기분이 좋아도 두드리고 화가 나도 두드린다. 누구든 북을 빼앗으려 하면 오스카는 귀를 찢을 듯 비명을 질러댄다. 주변의 유리란 유리는 모두 깨져버릴 정도로 날카로운 그의 외침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수업에 방해된다며 담임이 강제로 북을 빼앗으려 했을 때도 교실의 유리창은 물론 안경알까지 깨버려서 선생님과 반 아이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다.

'양철북'은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195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문학은 읽는 사람과 그의 입장과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오스카의 비명은 히틀러 치하, 개인의 삶을 빼앗기고 고통받으면서도 신음은커녕 숨소리마저 죽이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를 내야 할 때는 내야 한다. 건강한 감정의 해소이고, 상대의 잘못을 적절히 지적해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다만 적절치 못한 분노는 성숙하지 못한 인격의 표출이고,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황소 앞에서 배를 부풀리는 개구리처럼 자신을 크게 보이게 해서 상대방을 제압하고 싶은 것이다. 개구리가 커봐야 얼마나 클 수 있을지는 본인만 모를 뿐, 세상은 다 안다. '불같이 화를 냈다'거나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며 '분노의 정치'란 용어가 자주 보인다. 오스카처럼 비명 지르고 싶은 걸 애써 참고 있는 많은 사람은 '적반하장'이나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을 떠올릴 것 같다.


조선일보 A29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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