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북한에 알아서 기는 정부

김진명 정치부 기자
입력 2019.10.09 03:14
김진명 정치부 기자
지난 2일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 3형을 발사하자, 영국·프랑스·독일은 이를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보고 안보리 논의를 요구했다. 8일 정례브리핑에 나선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에게 그 사실을 거론하며 '이 같은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김 대변인은 "안보리 주요 이사국과 여러 사안에 대해서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는 식으로 답했다. '북극성 3형 발사에 대한 정부의 평가'를 묻자, 김 대변인은 "누차 여타 기관에서도 말씀드렸던 것 같다. 추가할 부분이 없다"고 했다. '외교부는 북극성 3형의 발사가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평가하는가'라고 다시 물었지만, 김 대변인은 또 "추가할 사항이 없다"고 했다.

북극성 3형 발사 당일 청와대는 "북·미 협상 재개를 앞두고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한 데 대한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 위반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그날 국정감사에서 '안보리 결의 위반이냐'는 질문에 "안보리에서 판단할 사안"이라고 답변을 피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김 대변인에게 '정부가 북극성 3형의 발사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가'라고 다시 물었다. 그는 "다른 분 질문 받겠다"며 말을 돌렸다.

유엔 안보리가 2009년 6월 이후 채택한 대북 결의는 모두 북한에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떠한 발사도 금지한다"고 했다. 북한 스스로 "새형(신형)의 탄도탄"이라고 발표한 북극성 3형 발사는 분명히 결의 위반이다. 그래서 미 국무부는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명확한 일을 4번 물어도 4번 다 답하지 못한다. 미국의 논평이 북한의 결의 위반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외교부 당국자는 "교통 위반을 하지 않더라도 안전 수칙을 지키라는 캠페인은 할 수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외교·안보 부처들은 줄곧 '홍길동' 소리를 들어왔다. 북한이 잘못해도 잘못했다고 말하지 못해서다. 한동안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들을 정부는 '미상(未詳)' 혹은 '불상(不詳)의 발사체'라고 불렀다. 정경두 장관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북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북한 멧돼지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며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불과 하루 뒤 환경부는 비무장지대(DMZ) 내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밝혔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부형(父兄)이 있되 호부호형을 못 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한탄했다. 북한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정부 당국자들이 과연 그런 자괴감이라도 느끼는지 궁금하다. 지켜보는 국민은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조선일보 A30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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