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362] 즐거움의 진화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9.10.09 03:12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인간은 무엇을 원할까? 먼저 당연히 의식주 해결을 원할 것이다. 아니, 의식주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 피라미드 구조로 설명한 바 있다. 먼저 생리적 욕구, 그다음 안전과 애정, 그리고 맨 나중 존경과 자아실현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매슬로가 잊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인간에겐 즐거움과 재미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생각만 하는 '사피엔스'가 아닌, 재미와 즐거움 역시 추구하는 '호모 루덴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성원들이 어떤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는지가 그 사회의 수준과 미래를 좌우한다고 주장해볼 수 있겠다. 로마제국 시민들은 검투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격투를 무엇보다 즐겼고, 중세기 유럽 도시에서는 죄수의 공개 화형식을 피크닉같이 즐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2019년 대한민국 사회는 무엇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까? 연예인들 간의 잡담과 먹방, 가짜 뉴스와 음모론, 그리고 타인의 고통과 파멸이 엔터테인먼트가 되어 버린 세상. 오늘날 우리의 즐거움은 앞으로 경험할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역사에서 물론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력과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미래를 최근 '제로원데이'라는 행사에 참여하며 느낄 수 있었다. 예술과 기술과 비즈니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최첨단 기술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놀이가 되어 버린 모습을 보며 실리콘밸리보다 더 멋지고, 일본보다 더 자유롭고, 유럽보다 더 앞장선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을 잠시나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150년 전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반복하는 것도, 일제강점기를 다시 경험할 것도 아니다. 미래의 불행과 행복은 언제나 과거의 행복과 불행과는 다르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선택한 즐거움이 미래의 행복 또는 불행의 씨앗이 될 뿐이다.


조선일보 A30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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