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윤 기자의 혼자 보긴 아까워] 이혼하고 싶을 때 써보세요, 내가 그를 사랑했던 이유

황지윤 기자
입력 2019.10.08 03:00

영화 '결혼 이야기'

이혼은커녕 결혼도 못 해봐서일까. 남들 지지고 볶는 이야기는 관전하는 재미가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결혼 이야기'(감독 노아 바움백)도 그런 영화다.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배우 니콜(스칼릿 조핸슨)과 극단 감독 찰리(애덤 드라이버) 부부가 갈라서는 내용. 제목은 '결혼 이야기'지만, 사실 이혼 이야기다.

이별할 때가 돼서야 그간의 연애사를 돌아보고, 죽기 직전에야 인생을 반추하는 게 우리네들 습관. '프란시스 하'(2012) '위아영'(2014)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2017)처럼 섬세한 블랙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온 바움백 감독이 이번엔 이혼을 소재로 결혼을 탐구했다. 이혼에 부닥쳤을 때가 우리가 결혼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고찰하는 때라는 것!

니콜(오른쪽·스칼릿 조핸슨)과 그의 변호사가 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찰리를 바라보는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내가 니콜을 사랑하는 이유는…, 지는 걸 싫어해요. 누구보다 아이처럼 놀 줄 알아요. 나를 언제 혼자 둬야 하는지 알아요." "내가 찰리를 사랑하는 이유는…, 아빠 노릇 하는 걸 좋아해요. 취향이 분명해요. 낙담하지 않아요." 영화는 이런 두 사람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원만한 이혼을 위해 분쟁 조정사를 찾은 둘은 '내가 왜 이 사람을 사랑했는지' 쓰라는 과제를 받는다. 이혼을 결심한 부부답지 않게 두 사람은 이 과제를 하면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말을 꺼내놓는다. 그러나 이혼이 평온할 리는 없다. 둘은 양육권을 놓고 지난하고 난잡한 싸움에 돌입한다. 니콜은 유명한 이혼 전문 변호사를 고용해 찰리를 압박하고, 찰리는 "나도 재수 없는 변호사가 필요해(I need my own asshole!)" 소리 치며 전투 태세를 갖춘다.

영화는 전쟁과 사랑, 애정과 증오를 오가며 관계의 진실을 묻는다. 말다툼을 하다가도 입에 붙은 '여보'가 불쑥 튀어나오고, 점심 메뉴를 못 고르는 찰리를 보며 '그릭 샐러드'를 척척 시켜주는 니콜의 모습에 웃음도 나오지만, 찰리가 뮤지컬을 하듯 'Being Alive'를 부를 땐 핑 눈물도 돈다. "누군가 나를 깊게 상처 내고, 누군가 내 의자에 앉아 잠을 방해하고, 살아 있음을 일깨워 줘, 혼란스럽게 해…. 하지만 혼자는 혼자일 뿐, 살아 있음과는 다르지." 부산에선 8일, 11일 또 상영한다. 올해 하반기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일보 A21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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