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진의 영화를 맛보다] 케첩으로 덮어도 아이는 안다… 그것이 가짜 사랑이라는 것을

송혜진 기자
입력 2019.10.08 03:00

'4등'의 핫도그

"마, 쌤이 니가(네가) 미워서 때린 것 아니거든! 니가 집중 안 하고 시키는 대로 안 해서 답답해서 안 그러나! (중략) 간절함! 어? 뼛속까지 새겨진 간절함! 그거만 있으면 니는 할 수 있는 아야!" 코치 광수(박해준)가 짐짓 큰소리로 외칠 때, 준호(유재상)는 대답 대신 설탕과 케첩이 뿌려진 핫도그를 집어 먹는다.

정지우 감독이 2016년 내놓은 '4등'은 세상 엄마·아빠가 보고 또 봐야 할 영화다. 준호는 수영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는 아이. 그러나 정작 대회에선 늘 4등만 해서 엄마(이항나) 속을 긁는다. 하필 4등. 금·은·동메달을 따진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만 바짝 하면 다음엔 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등수. 어떤 희망은 고문이 된다. 엄마는 아이가 메달만 딸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거칠기로 소문난 코치 광수에게 아이 수영 지도를 맡기고, 준호는 금세 2등을 한다. 온 가족이 기뻐서 잔치를 벌이던 날, 아빠(최무성)는 뜻밖에도 준호의 온몸이 멍투성이인 것을 발견한다.

욕심과 사랑을 혼동하는 건 얼마나 쉬운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의 좌절된 욕망과 아이의 꿈을 분간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엄마도 아빠도 코치도, 준호가 1등을 하길 바라지만 과연 그게 준호의 꿈인지 자신의 섣부른 바람인지 다들 정확히 알지 못한다. 광수는 자신의 서툰 조바심을 감추기 위해 준호를 함부로 때리고는 분식집에 데려가서 "니 핫도그 묵을래"라고 묻는다. 케첩 묻은 핫도그 맛으로 아이가 부당하게 얻어맞은 기억을 잊어줄 거라고 믿으면서. 아이는 그러나 종종 어른의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는 존재다. 준호는 핫도그와 어설픈 훈계로 어른인 척하는 이들 앞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맞지 않고 때리지 않고도 메달을 따야 진짜라고 생각해요.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해요." 이때 아이의 목소리가 윤기 나는 밤톨보다 야무졌던가.

준호의 까만 눈동자를 떠올리며 핫도그 하나를 샀다. 한 입 두 입 깨물면서 깨달았다. 어른이 설탕·케첩으로 함부로 덮어도 아이들은 알아차린다는 걸. 숨은 맛과 진짜 사랑이 결국 무엇인지 말이다.



조선일보 A20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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