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서 통했다, '관종' 패션

파리=최보윤 기자
입력 2019.10.08 03:00

'파리 컬렉션' 데뷔한 한국 디자이너 김인태
"요즘 유행하는 관종, 아닌 척 부인하지 말고 쿨하게 즐기자고요"

"온라인에서 '관종(관심 종자)'이 유행이잖아요. 모두 '좋아요'를 갈구하죠. 누가 봐도 뻔히 관종인데 '관종이 아니다'라고 부인하지 말고, 그냥 쿨하게 즐기면서 좀 더 우아한 방식으로 한번 놀아보고 싶었어요."

지난 2일까지 열흘간 열린 '2020 봄 여름 파리 컬렉션'에 정식 데뷔한 한국 디자이너 김인태(33)는 "10년 뒤 '관종 문화라는 게 있었지' 하고 돌아볼 수 있도록 현시대를 반영하고 싶었다"고 했다. 파리 쇼에 'attention seeker(관종)'란 단어를 앞세운 이유다.

2014년 파리에서 자신의 본관을 딴 '김해김(Kimhekim)' 브랜드를 선보인 그는 올해 프랑스패션연합회(FHCM)가 인정한 '공식 스케줄' 첫날 무대를 열었다. '인태킴' 대신 '김인태'라고 현지 친구들에게 말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김해김 가문의 김인태'라는 뜻을 담아 '김해김'을 탄생시켰다. 파리 컬렉션에서는 수백개의 쇼와 프레젠테이션이 열리지만, FHCM이 공식 쇼 스케줄로 발표하는 건 샤넬·루이뷔통·발렌티노 등 77개 세계적인 브랜드뿐. 그들과 나란히 무대에 선 김인태는 거인의 옷을 훔쳐 입은 듯한 모델,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셀카봉'을 든 모델〈큰 사진〉, '김인태 김해김'이란 라벨을 수십개 붙인 의상을 입은 모델들로 런웨이를 누비게 했다.

/김해김

최근 파리에서 만난 김인태는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건 결국 나밖에 없었다"며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확인받는 수단이 인스타그램뿐이었다"고 털어놨다. 패션지에 가끔 노출됐을 뿐 대단한 홍보를 했던 것도 아닌데, 인스타그램 '메종 김해김'(@maison_kimhekim)으로 옷을 사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현재 '메종 김해김'의 팔로어는 7만여명. 전 세계 50여개 매장에서 팔리며 비욘세, 레이디 가가, 리한나 등 톱스타들이 그의 옷을 입었다. 지난 8월엔 'D(디즈니)23 엑스포' 레드카펫에 선 할리우드 스타 엘 패닝이 김해김의 분홍색 리본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김인태는 "수많은 협찬 요청이 있지만 나같이 젊은 디자이너들은 대형 스타들이 옷을 사줘야 성장할 수 있다"며 "2년 정도 협찬을 거절하니 어느새 다들 직접 사 입더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다 뒤늦게 패션으로 눈을 돌린 그는 2005년 에스모드 서울에서 패션 공부를 시작해 2009년 파리 스튜디오 베르소를 졸업했다. 당시 발렌시아가 총괄디자이너였던 니콜라 제스키에르(현 루이뷔통 총괄 디자이너) 밑에서 2년간 일하면서 컬렉션 감각을 익혔다. 남들보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어린 시절 손바느질 솜씨 뛰어났던 할머니와 한복을 만들어 놀면서 손에 익힌 취미가 그의 미래를 바꿨다. 쇼엔 국내 한복 장인과 협업한 도포와 겹겹 치마 드레스가 등장한다. 얇은 오간자 소재 한복 시접을 손바느질로 마감할 수 있는 이들은 한국 장인이 유일하다는 게 그의 강한 믿음이다.

파리 쇼가 끝난 뒤 해외 패션지들은 극찬을 쏟아냈지만 일부 팬들은 비난했다. 수액 병을 끌고 다니는 무대 위 모델〈작은 사진〉에 대해 '질병'을 패션 액세서리 삼았다는 지적이다. '악플'이 거셌지만, 첫날만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3000명 넘게 늘었다. "저도 관종처럼 지내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자주 올리고 관심받고 싶어하고…."


조선일보 A20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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