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연극을 봐야 할 이유

박돈규 주말뉴스부 차장
입력 2019.10.08 03:15
박돈규 주말뉴스부 차장

청와대 근처 어느 지하 소극장에서 '햄릿'을 보았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끝이 비슷하다. 주검이 된다. 남녀 주인공 햄릿과 오필리어는 날마다 죽어야 한다. 물론 죽음을 연기(演技)할 뿐이지만 그 배우들이 부러웠다.

죽음을 알아야 삶이 깊어진다. '대통령 염장이' 유재철씨가 들려준 말이다. 고(故) 최규하·노무현·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를 직접 모신 사람이다. 법정 스님을 비롯해 큰스님들 다비도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는 안 죽을 것처럼 살지요. 그런데 스티브 잡스를 보세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뭘 할까, 매일 자문했습니다. 기자도 원고 마감 시간이 있어야 뭐라도 나오잖아요. 죽음은 그래서 축복일 수 있습니다. 죽는다는 걸 의식하면 하루하루가 소중해져요."

사람은 대체로 60만~70만 시간을 살다 간다. 수명만 길어질 뿐 생로병사는 그대로다. 노년이 늘어날수록 슬픔을 견뎌야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위중한 질문이다.

오늘도 햄릿은 세계 어느 극장에서 고통을 짊어지고 죽어간다. 고귀한 주인공의 파멸을 보면서 관객은 연민과 공포를 느끼고 자신을 돌아본다. 삶이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왜 현재에 감사해야 하는지 일깨우기 위해 비극은 존재한다. 아마도 그래서 인기가 없을 테지만.

삶에서 고통스러운 구간을 지날 때는 유머가 필요하다. '햄릿'에 광대가 등장하듯이, 왕이 심각한 문제로 돌아가려면 웃음이 필요했다. 코미디는 왕이 점잔만 떠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그를 구해냈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대 영국에서는 히틀러를 조롱하는 노래가 유행했다. 공습의 공포 앞에서 쾌활을 유지하기 위한 반작용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가. 비극도 희극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다들 죽겠다고 난리다. 또 죽이겠다며 씩씩거린다. 웃음이라고는 냉소뿐이다. 지금 광장은 이 사회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길잡이다. 균형 회복이 필요하다.

손에 망치만 들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망치 말고 스패너나 펜치, 대패로 풀어야 하는 문제도 있기 마련이다. 연장은 다양할수록 좋다. 정치에 매몰돼 모든 문제를 못으로만 보고 망치로 탕탕 때려 박기에는 인생이 아깝다. 야구 중계나 단풍 감상, 아예 책에 파묻혀 지내는 것도 방법이다.

혹시 사람이 그립다면 극장에 갈 일이다. 비극을 보시라. 죽음을 알아야 삶이 깊어진다. 아니면 희극을 보시라. 현실의 절망에 대처하는 약물이다. '메멘토 모리(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삶에서 우선순위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결국 죽어 먼지가 된다고 생각하면 근심은 대부분 무의미하다.



조선일보 A30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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