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하십시오" 교황의 한마디, 폴란드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되다

바도비체·비엘리치카(폴란드)=김태훈 기자
입력 2019.10.07 03:00

[동유럽 가톨릭 성지를 가다] [2] 폴란드 바도비체

聖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 첫 방문 40주년 맞아 곳곳서 추모
공산정권으로 불안 겪던 이들에게 민족애와 자유의 가치 일깨워
지하 327m 깊이의 소금광산엔 광부들이 만든 '작은 성당' 곳곳에

폴란드의 바도비체는 성(聖)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 교황이 나고 자란 도시다. 그가 유아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를 한 성당 '복되신 동정 마리아 봉헌 소(小) 바실리카'가 이곳에 있다. 성당 내부에 자리한 성가정 경당(chapel)에서 90여 년 전 카롤 보이티와(요한 바오로 2세의 본명) 아기가 가족의 기도 속에 세례를 받았다.

성당은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현재 박물관으로 조성된 생가와 나란히 붙어 있다. 두 곳 모두 연간 40만명이 방문한다. 지난달 22일, 오전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성당 앞 공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왜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걸까?"라는 의문은 성당 문을 열자마자 풀렸다. 앉기는커녕 서 있을 자리도 없었다.

(왼쪽 사진)9세 때 첫영성체를 한 카롤 보이티와(요한 바오로 2세의 본명). 한 달 전 모친을 여읜 슬픔 탓인지 얼굴이 굳어 있다. (오른쪽 사진)소금광산 지하 100m에 조성된 ‘성녀 킹가 성당’ 입구에 세워진 요한 바오로 2세의 소금 입상(立像). /김태훈 기자
올해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고국 첫 방문 40주년이자 폴란드 민주화 30주년 되는 해다. 1978년 교황에 즉위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듬해 6월 4일 '검은 성모' 성화로 유명한 쳉스토호바를 방문해 미사를 주례했다.

이 미사가 폴란드 민주화에 큰 획을 그었다. 당시 폴란드 공산정권은 집회와 시위를 금지했는데, 교황이 되어 돌아온 그를 보기 위해 인파가 몰려들었다. 광장에 운집한 폴란드인들은 술렁였다.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혁명적 의미를 띨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교황은 그 자리에서 동포를 향해 당부했다. "그리스도가 폴란드 1000년 역사와 함께했습니다. 연대하십시오." 믿음의 자유와 민주화를 향한 10년간의 투쟁이 교황의 그 강론으로 시작됐다. 레흐 바웬사가 주도한 '연대'(솔리다르노시치) 자유노조도 교황의 모국 방문 이듬해인 1980년 결성됐다. 숱한 희생이 잇따랐다. 계엄령이 선포됐고, 자유노조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예지 포피에우슈코 신부는 1984년 납치돼 저수지에 수장당했다.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쳉스토호바 성지에 세운 석상엔 추모객들이 놓고 간 꽃다발이 늘 수북이 쌓여 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유아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를 한 ‘복되신 동정 마리아 봉헌 소 바실리카’. 성당을 찾는 이가 많아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미사 드린다. /김태훈 기자
바도비체와 요한 바오로 2세가 대교구장을 지낸 크라쿠프는 도시 곳곳에 교황의 사진을 내걸고 그를 기리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순례단을 안내하던 현지 가이드는 "가는 곳마다 계시니 교황께서 마치 축지법을 써서 먼저 당도해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교황을 향한 폴란드인들의 사랑과 자부심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1964년 개항한 크라쿠프 국제공항은 1995년 '요한 바오로 2세 크라쿠프 국제공항'으로 이름을 바꿨다.

바실리카 옆 생가 박물관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종교인의 생애를 음미하는 공간이다. 9세 때 첫영성체를 한 카롤의 기념촬영 사진이 순례자의 눈길을 오래 붙잡았다. 뜻깊은 날이었지만 소년의 얼굴은 굳어 있다. 병을 앓던 어머니를 바로 한 달 전 여읜 슬픔을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암살범이 쏜 흉탄에 쓰러졌다가 가까스로 회복한 뒤 범인을 찾아가 "용서한다"며 미소 짓는 교황의 사진 앞에선 가슴이 먹먹해진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도 폴란드인의 신앙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가톨릭 명소다. 1996년 소금 채취가 중단된 이 광산에 들어가려면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378개 나무 계단을 따라 지하 68m를 수직으로 내려가야 한다. 지하 327m까지 소금을 파내 생긴 방 2000여 개가 총연장 200㎞에 이르는 갱도로 연결돼 있다. 붕괴 위험 때문에 삶과 죽음이 찰나에 갈리는 극한 환경에서 일했던 광부들은 소금을 파낸 공간에 크고 작은 성당을 만들며 신의 자비를 구했다. 2010년엔 갱도에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새긴 나무 부조(浮彫) 14처(處)를 제작해 '비엘리치카 골고다의 길'을 조성했다.

순례자가 방문할 수 있는 소금 성당은 28곳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지하 100m에 조성된 '성녀 킹가 성당'이다. 길이 54m, 폭 17m, 높이 10~12m로 웅장한 이 성당은 소금 벽을 깎아 만든 예수의 일대기 부조와 입상·조각들로 유명하다. 특히 '최후의 만찬' 부조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입상 주변은 기도하는 이와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로 늘 붐빈다.


조선일보 A21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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