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둘로 쪼개진 사회, 지금 이건 나라일까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입력 2019.10.07 03:17

조국이 뭐라고 친척·친구가 갈라지고 거리의 정치로 대립하나
'이게 나라냐'고 했는데 지금 '이건 나라일까'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주 조국 사태를 두고 열린 서로 다른 성격의 대규모 집회를 보며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갈등과 대립이 제도의 정치를 통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어 가면서 이제는 거리의 정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결코 건강하지 못한 상황이다. 도대체 조국이 뭐라고 명절에 모처럼 만난 친척들이 그걸 두고 불화하고, 즐거워야 할 친구들 간의 모임이 말다툼 끝에 얼굴을 붉히고 헤어져야 할까. 거리 집회에서 드러난 모습 이전에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일상생활에서 이미 갈등과 분열은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념과 생각의 차이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고 그러한 다원성이 우리 체제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분열과 갈등은 실제 정책이나 이념과 무관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애당초부터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나타난 극심한 분열은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에서 촉발된 것이다. 그래서 분열의 한가운데 문 대통령이 놓여 있게 되었다. 국민 통합의 상징이 되어야 할 대통령이 특정 정파만을 챙기는 '한쪽의 대통령'처럼 여겨지면서 우리 사회는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과연 문 대통령은 자신이 한 이 말을 기억이나 할까.

사실 분열의 씨앗은 집권 세력이 정치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미 배태되어 있었다. 과거 운동 정치의 경험으로 갖게 된 도덕적 우월감 속에서 우리 편은 선, 자신들을 반대하는 자와 경쟁자들은 악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그 악은 제거되어야 했다. 적폐 청산은 이런 시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과거 시대의 누적된 잘못과 폐단을 고치겠다는 걸 누가 싫다고 할까. 그러나 폐습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나 관행의 개선이 아니라, 이전 정권 인사들이나 반대 세력에 대한 벌주기, 망신 주기로 적폐 청산 작업이 진행되면서 문 대통령이 '감히 약속'하겠다고 한 '진정한 국민 통합'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적폐 청산이란 명분하에 진행된 일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결국 정치적 반대자, 경쟁자들에 대한 또 다른 정치 보복과 다름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적폐 청산에 열중해 온 정권이 그들이 '적폐'라고 낙인찍은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거나 심지어 더 심한 잘못을 저지른 인사를 옹호하고 변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수의 국민은 배신감과 좌절감을 갖게 된 것이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이념이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문 대통령의 공정하지 않은 인식과 균형감을 잃은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이 역시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했던 말이다. 그 말과 달리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이득을 보고 입시를 치렀는데 '우리 편'이라는 이유로 감싸고 도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오게 된 것이다. 반(反)조국 집회를 그저 정파적인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어떤 형태로 이 사태가 끝이 나든 간에 문재인 정부는 이번 일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찍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면 이렇게까지 크게 불거질 것도 아닌 일을 두고 진영 논리나 정파적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대통령이 고집을 부린 탓에 거의 두 달째 국정은 방황하고 있다. 여러 해 전 속수무책으로 가라앉는 여객선을 보며 '이게 나라냐'라고 비판했던 이들이 이제 나라를 이끌고 있다. 그때보다 나라는 좀 나아졌을까. 사회적 갈등과 분열의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고, 선거에 눈이 어두운 정당들은 국민을 선동하며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양쪽으로 갈라진 분열의 정치가 거리에서 제도의 정치를 대신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 속에서 북한은 미사일을 쏴 대고 미국과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해 보인다. 일본과의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고 중국과의 관계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청년 일자리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고 위태로운 지경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어디서도 희망을 찾지 못하고 활력을 잃어가면서 우리 사회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건 나라일까.



조선일보 A30면
말모이100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