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의 이별 통보 후, 뛰어내리려고 옥상 난간에 섰지만…

이기호·소설가
입력 2019.10.05 03:00

[아무튼, 주말- 누가 봐도 연애소설] 뭘 잘 모르는 남자

그는 고시원 옥상 철제 난간 앞에 서서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새벽 두 시. 도로엔 지나다니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엔 전봇대 아래 쌓인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노리는 길고양이가 꼭 한두 마리씩 있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더니, 과연 가로수 잎사귀들이 연신 쏴, 쏴, 파도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오늘 죽기로 결심했다.

그냥 여기서 툭 뛰어내리면 끝인 거지. 그는 난간 밖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어 보았다. 고시원은 오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잘못 떨어지면 에어컨 실외기에 먼저 부닥뜨리겠는걸. 그는 난간을 잡고 조심조심 옆으로 몇 걸음 이동했다. 그러고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여긴 차가 있네. 그는 그 차의 주인을 잘 알고 있었다. 고시원 같은 층 302호에 살고 있는 사십 대 초반의 남자였다. 새벽 배송 일을 하고 있어서 늘 새벽 세 시 반에 출근하는 남자, 그 남자는 새벽 배송을 마치면 다시 편의점 알바를 뛴다고 했다. 몇 번 고시원 공용 식당에서 그 남자가 건네는 오징어 젓갈 반찬을 얻어먹은 적도 있었다. 남한테 폐를 끼치면 안 되지. 이런 건 보험 처리도 안 될 텐데…. 그는 다시 몇 걸음 옆으로 이동했다. 고시원 정문도 좀 그렇고, 여긴 옆 건물과 너무 가깝고…. 그는 옥상을 한 바퀴 삥 돌아 다시 맨 처음 자리로 돌아왔다. 신경 쓰지 말자, 죽는 마당에 그깟 실외기가 뭔 대수라고. 그는 난간 위로 조심조심 올라갔다. 한 차례 세찬 바람이 불어와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춰 난간 쇠기둥을 움켜잡았다. 그는 다시 느릿느릿 아래로 내려왔다.

미연이는 전화 한 통 없구나….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어쩜 이렇게 사람이 매정할까? 그는 난간에 기대 쪼그려 앉은 채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는 밤 열한 시부터 모두 아홉 통의 문자 메시지를 미연에게 보냈다. '네 말이 전부 맞아. 난 쓰레기야.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해' '이제 정말 다 끝난 거 같다. 이렇게 끝내긴 정말 싫었는데…. 너한테 제일 미안해'에서부터 '마지막으로 네 목소리를 꼭 한번 듣고 싶었는데…. 그래도 후회는 없어' '그동안 고마웠고, 혹시라도 내 소식 듣더라도 너무 놀라진 말아줘. 이건 어디까지나 내 선택이니까'까지, 그는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문자를 보냈지만, 미연은 단 한 통도 답장하지 않았다. 혹시 잠든 건가? 핸드폰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거 아니야? 그는 카톡까지 뒤져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일러스트=박상훈

그가 미연과 헤어진 것은 보름 전의 일이었다. 헤어졌다기보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고 하는 게 맞았다. 그날, 미연은 그를 만나러 직접 고시원 앞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 고시원이 아닌 피시방에 있었다. 전화 오는 것도 모른 채 게임만 내리 세 시간을 하다가 돌아온 그는 고시원 정문 출입구 계단에 정물처럼 앉아 있는 미연을 발견했다. 사실 그런 일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공시생이었던 그는 번번이 잠깐만, 잠깐만 머리를 식히러 가자, 하는 식으로 피시방을 갔고, 그러다가 자주 미연을 기다리게 했고, 그게 벌써 사 년째 이어져 오고 있었다. 작은 식품 회사에서 경리직으로 일하는 미연은 그날 그에게 이별을 통보한 후, 이렇게 말했다.

"네가 시험에 떨어져서 이러는 게 아니야…."

미연은 숨을 한 번 고른 후 계속 말했다.

"난 네가 자꾸 나를 무시하는 거 같아. 그렇게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래도 자꾸 그 생각이 들어."

그는 그날 이후 계속 미연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다.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리겠다고, 나도 좀 힘들고 답답해서 그랬다고, 이해해 달라고 말했으나, 미연은 단호했다. 그는 화를 내기도 했고, 다시 애원하기도 했다. 미연에게 저녁에만 모두 백 통 넘게 전화를 걸기도 했고,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의 회사 앞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했다. 혹시 다른 남자가 생겼나? 내가 뭘? 내가 뭘 무시했다는 거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 시험 떨어진 거 때문에 그런 거지…. 내가 시험에 붙었어도 그런 말을 했을까? 그는 회사 밖으로 나온 미연을 보고 직접 그렇게 묻기도 했다. 하지만 미연은 그런 그를 말없이 몇 초간 노려보다가 '네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아'라는 말만 남기고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다시 미연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기를 보는 미연의 눈빛이 예전과 너무 달라졌다는 것을, 그것을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옥상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다시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는가 싶더니 이내 '고객의 사정으로 당분간 전화할 수 없습니다'라는 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수신 거부를 해놨구나, 그래서 문자도 못 보는구나…. 그는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가 돼야지 마지막 말이든 뭐든 하지. 그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태풍도 온다는데…. 그는 슬리퍼를 끌고 옥상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삼층까지 내려와 306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는 그때 막 출근 준비를 끝내고 나오는 302호 남자를 만났다. 그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302호 남자는 목에 수건을 두르고 양손엔 목장갑을 낀 모습이었다. 그것이 그 남자의 출근 복장이었다.

"벌써 나가세요?"

그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목장갑을 낀 손으로 운동화 끈을 다시 묶었다.

"새벽에 일하려면 힘드시겠어요?"

그가 다시 말하자 "남들도 다 그런걸요"라고 남자가 짧게 말했다.

"그래도 이게 배송이라는 게 참…."

그가 문 앞에 선 채 계속 말하자 남자가 힐끔 그를 올려다보았다.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말 안 합니다. 그냥 일만 하는 거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남자가 한 말을 다시 생각해봤으나,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서 바로 침대에 누웠다. 그는 자신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것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조선일보 B11면
3일의 약속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