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빈집 빌려주면 벌 받는 나라

정성진 산업2부장
입력 2019.10.03 03:13

지방 142만 빈집 공유도 빅데이터 사용도 불법인 한국
외국 기업에 시장 다 잃는 규제망국(規制亡國) 될 수도

정성진 산업2부장
전국에 1년 이상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돼 있는 빈집은 정부 공식 통계로만 142만 채다. 지방 소멸 위기론까지 나온다. 심한 마을은 집 절반이 비어 있다. 슬럼화하면서 각종 사고 우려도 있다. 고향집에서 살던 부모님이 요양원에 들어가면, 그 집은 바로 빈집이 된다. 증가 속도는 고령화만큼 빠르다. 2015년 107만 채에서 3년 만에 35만 채가 늘었다. 정부는 작년 2월부터 빈집 정비계획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런 집을 고친 뒤 관광객에게 빌려주고 돈을 받는 '다자요'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창업자 남성준 대표는 "빈집이 된 고향집을 어떻게 하나"라고 걱정하는 지인의 말을 듣고 2015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집주인은 빈집을 공짜로 고쳐서 좋고 스타트업은 수익을 얻어 좋다. 물론 나중엔 집주인이 와서 살 수도 있다. 세금 안 들이고 빈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지난 6월 집을 빌려주던 주인 한 명이 행정 지도를 받았다. 현행 민박법은 사람이 거주하는 집만 빌려줄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빈집 대여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빈집을 이용하도록 장려한다. 심지어 매월 일정 금액만 내면 동해, 남해, 서해안을 돌아가며 지낼 수 있는 구독형 상품까지 나와 있다. 남 대표는 "한국에서는 '하면 된다'는 규정은 없고 '하면 안 된다'는 규정만 있다"며 "만나는 모든 당국자들은 '좋은 아이디어'라며 칭찬을 하고 난 뒤, '그런데 안 된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한국은 혁신의 불모지다. 모든 새로운 일은 할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몇 달째 서초동과 청와대, 광화문, 여의도를 벌집 쑤신 듯 시끄럽게 하는 검찰 개혁 논란이 예외인지는 모르겠다.

세계적인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에 따르면, 한국은 내국인이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불법인 유일한 나라다. 정부는 햇수로 3년 동안 법을 바꾸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중이다. 우버나 그랩 같은 차량 공유 사업도 못 한다. 기존 택시 사업자와 갈등을 조절한다던 당국은 택시 면허를 가진 사업자만 영업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비싼 콜택시만 늘고 있다. 정부 당국은 한 주방을 배달 음식 업체들에 빌려주려던 스타트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겠다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만 해라'라고 했다가 비웃음을 샀다. '남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공유 경제는 한국 정부엔 헛소리다.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의 '데이터 3법'은 한국 기업을 바보로 만든다는 비판을 받은 지 몇 년이 됐지만, 항상 개정 논의만 진행되다 만다. 개인 정보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법 때문에, 한국에서는 빅데이터를 이용한 정보 가공이 초보 수준에 멈춰 있다. 심지어 개인 데이터가 담긴 서버를 서버 전문 업체에 옮겨 보관하는 것도 안 된다. 개인 유전자 정보는 병원만 다룰 수 있고, 제약 회사는 못 쓴다. 원격 진료도 불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의 연료라는 빅데이터를 모으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다.

문제는 이런 혁신은 전 세계에서 한 시대에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규제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남의 나라 기업만 좋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10여년 전 한국 정부는 개인이 국내 인터넷에 올린 콘텐츠에 광고를 붙이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그러나 미국 기업인 구글의 유튜브를 막지는 못했다. 현재 유튜브는 개인이 올린 유튜브 영상에 광고를 맘대로 올린다. 개인도 유튜브도 돈을 번다. 살아 남은 국내 동영상 업체들은 몇 개 없다. 몇 년 뒤 우버, 에어비앤비도 유튜브처럼 한국 시장을 장악할지 모른다. 규제망국(規制亡國)이다.


조선일보 A31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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