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사람이 먼저라더니 조국만 사람이냐"

황대진 정치부 차장
입력 2019.10.01 03:15

대통령의 '조국 지키기' 선택… 국민 마음 모을 좋은 기회 놓쳐
대국민 메시지 전한 9월 27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 포기한 날

황대진 정치부 차장
경제학에 '기회비용'이란 개념이 있다. 어떤 선택을 위해 포기한 기회들 가운데 가장 큰 가치를 갖는 기회, 또는 그 기회가 갖는 가치를 말한다. '조국 사태'에서 선택권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에게는 최소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9월 초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조 장관을 임명하기 전이었다. 그러나 "의혹만으로 사퇴시키면 나쁜 선례를 남긴다"며 임명을 강행했다. 두 번째는 같은 달 26일 유엔총회 후 귀국 시점이다. 그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조 장관이 자택 압수 수색을 나간 검사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 '외압' 논란이 일었다. 야당은 조 장관 탄핵을 주장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다음 날 이례적인 대검찰 메시지로 응수했다. '성찰하라' '절제된 수사가 중요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결국 조국을 지키기로 했다. 이 선택을 위해 포기한 기회비용은 뭘까. '국민 통합'이라고 생각한다. 조국 사태는 여야, 좌우로 갈린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을 좋은 기회였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조국을 버리는 선택을 할 경우 중도는 물론 보수층의 박수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의 골수 지지층이 크게 돌아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애초 조국을 장관에 임명하겠다고 했던 것 자체가 대통령의 잘못된 의사 결정이었다는 점은 기록에 남는다. 이것은 '매몰비용'이다. 매몰비용은 어떤 선택을 위해 지출한 비용 가운데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그러나 이미 돈을 지불하고 산 물건이라도 쓸수록 나에게 해(害)가 된다면 사용을 중단하고 버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에선 기회비용은 꼭 기억하고 매몰비용은 반드시 잊어버리라고 가르친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다.

여론조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조국 사태 이후 문 대통령은 대략 5~10%포인트가량 지지율 하락을 겪었다. 적지 않은 '정치적 비용'이다. 그러나 이 비용은 영원히 회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 하기에 따라서는 언제든 복구가 가능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 모든 비용을 감수하고 '조국 지키기'를 선언했다. 대통령은 조 장관 가족 수사에 '인권'을 거론하며 검찰의 '절제'를 요구했지만,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변창훈 검사 등이 검찰 수사 도중 극단적 선택을 할 때는 침묵했다. '전화 외압' 논란에 조 장관은 아픈 아내를 걱정한 '인륜'의 발로라고 했지만, 가족이 수사받을 때 검사에게 전화할 수 없는 수많은 가장(家長)은 사람의 도리도 못하는 자가 됐다. "사람이 먼저라더니 조국만 사람이냐"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문제는 대통령이 포기한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온 국민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문 대통령은 27일 메시지에서 "검찰이 할 일은 검찰에 맡기고 국정은 국정대로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지혜를 모아달라"고 했다. 자신의 선택을 지지해달라는 대국민 메시지였다. 다음 날 대통령 지지자들은 '지혜' 대신 엄청난 숫자의 '촛불'을 서초동에 모아줬다. 그 결과 온 나라는 다시 반으로 쪼개졌다. 한국당 등 야권은 3일 광화문에서 대규모 맞불 집회를 준비 중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라고 했다.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도 했다. 2019년 9월 27일은 문 대통령이 '진정한 국민 통합'을 포기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조선일보 A31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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