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은 잊어라, 개발 바람에 '화성 벽해'

화성=권상은 기자 화성=조철오 기자
입력 2019.09.23 03:00

연쇄살인 벌어졌던 태안읍, 인근에 동탄 신도시 들어서 땅값 폭등
이춘재 일가도 수십억 재산… 외지인 이주로 주민 구성도 바뀌어

첫 사건 발생 33년 만에 유력한 용의자가 확인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현장은 당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사건은 1986~1991년 화성군 태안읍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잔혹하게 살해된 피해자들이 발견된 곳도 농수로나 논바닥, 야산 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장 일대가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뤘다. 2000년대에 들어서 수도권 개발 축이 용인을 거쳐 화성~오산~평택까지 넓어지면서 쓸만한 땅이 많았던 화성이 개발의 핵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옛 태안읍 지역은 최근 부동산 경기도 호황을 맞고 있다. 인근 동탄면 일대를 중심으로 2001년부터 2기 신도시인 동탄신도시가 추진되면서 개발 바람을 탔다. 4만 가구가 넘게 입주한 동탄1신도시가 건설됐고, 인근에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도 들어섰다. 옛 태안읍 지역의 인구는 1985년 2만9000여명에서 16만6000여명으로 늘었다. 화성시도 오산시(1989년 화성군 오산읍에서 분리 승격) 지역까지 포함해도 당시 22만명이었으나 8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10건 중 5건이 발생할 무렵이던 1987년 당시 경기 화성군(현 화성시) 태안읍 일대의 풍경(사진 위). 논밭이 대부분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아래 사진은 22일 화성시 병점동에 들어선 아파트와 상가들. 병점동은 옛 태안읍의 일부다. /화성시·정지섭 기자
특히 상당수의 원주민은 보유하고 있던 농지 등의 땅값이 폭등하면서 재산가가 됐다.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이고 주변에 아파트 입주, 역세권 개발 등으로 상권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또 아직 개발되지 않은 논도 몰려 있어 대단위 아파트 단지 개발 등 호재가 많다. 수도권 전철 1호선 병점역이 자리 잡고 오랜 역사를 가진 1번 국도가 통과해 위치도 좋다. 상권이 밀집해 중심지인 병점역 인근의 건물 소유주 가운데에는 원주민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용의자 이춘재(56)의 가족도 최소 수십억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이 마을 주민 등에 따르면 이씨 집안은 대대로 벼나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제법 많은 농지를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이 개발돼 땅값이 오르면 쪼개서 팔고 화성의 다른 지역에 대체 농지를 구입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이춘재 일가가 사는 진안동 일대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평당 1000원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보통 300만~500만원으로 수천 배가 뛰었다"고 말했다.

본지 확인 결과 이씨의 모친 김모(75)씨는 진안동 번화가에 보유하고 있던 약 100평 크기의 땅을 2010년 매각했다. 현 시세는 평당 700만~800만원(7억~8억원)으로 당시 매매가는 5억~6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김씨는 2014년에도 다른 토지 200평을 매각했다. 부동산 관계자는 당시 시세는 평당 500만~600만원 선으로 10억~12억원에 거래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씨 집안을 아는 한 지인은 "보유한 땅이 상당히 넓어 모두 합치면 현재 가치로 최소 100억원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모친은 여전히 이 지역에 토지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옛 집터 근처의 대지 530평을 매물로 내놓았다. 이곳은 이씨의 동생이 최근까지 사업용도로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거래가는 평당 500만원 수준(총액 약 26억원) 정도이나 공시지가 수준인 평당 390만원까지 낮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보유하고 있으면 값이 계속 오를 텐데 공시지가에 맞춰 싸게 내놓은 것은 특이한 경우"라고 말했다.

화성은 개발 바람을 타고 흉흉했던 이미지가 많이 사라졌다. 외지인들이 잇따라 이주해 주민 구성도 바뀌었다. 특히 치안 여건이 많이 개선됐다. 화성시는 지역안전지수 범죄분야 2등급을 5년간 지속하고 있다. 화성 사건을 겪은 1990년대 중반부터 경찰서와 인력이 늘어나고 방범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되는 등 치안 여건이 크게 나아졌다.



조선일보 A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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