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文 대통령이 얘기했던 국가 비상사태

박종세 부국장 겸 여론독자부장
입력 2019.09.23 03:15

3년 전 청년실업 지적하며 '국가 비상사태'라 했던 文 대통령
복지성 노인 일자리 양산해놓고 "경제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말해

박종세 부국장 겸 여론독자부장
청년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문재인 정부가 청년 일자리 대신 복지성 노인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는 건 아이러니다. 지난 18일 정부는 인구 대책의 일환으로 정년을 사실상 연장하는 계속고용제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관련 기사마다 주로 30·40·50대 연령대 사람들이 고루 댓글을 달았는데, 대부분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정년 연장은 시기상조. 20~30대 일자리도 없다. 청년실업부터 해결해야 한다.' '청년들이 옛날처럼 양질의 직장에 쉽게 취업할 수 있도록 장년층들이 비켜줘야 한다.' '하지 마라. 그나마 고용 연장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다 살 만한 집들이다. 중소기업 기타 직군의 힘든 사람들에게는 남 이야기이고, 청년들에게는 암울한 이야기다."

정년 연장이 청년층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일반 국민도 걱정하는데, 정작 정부의 발표에는 이에 대한 보완책이 들어 있지 않았다. 지난 2016년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뒤 청년실업률은 9.1%에서 9.8%로 뛰었다.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이 신입사원을 뽑기 힘들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도 같이 도입하는 것을 권고했지만, 강성 대기업 노조에 막혀 임금 조정은 곳곳에서 무산됐다. 다음 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 유력 후보 자격으로 "청년 일자리 부족이 매우 심각해서 청년실업률이 9.8% 사상 최대다. 청년이 취업·결혼·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헬조선'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국가 비상사태다. 일자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비상 경제 조치 수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집권 후 문 대통령은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까지 걸었으나 괜찮은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청년들이 대학 졸업 후 첫 번째 잡은 직장이 단순 노무직인 경우가 2016년에는 31만9000명이었으나, 올해 조사에서는 39만1000명으로 늘었다. 지난 8월 취업자가 45만명으로 반짝 늘어났지만, 이 중 39만명이 60세 이상 취업자였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니 국민이 뒷목을 잡는 것이다.

'일자리가 성장이고, 최고의 복지'라는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현 정부의 어젠다가 실패하고 있는 것은 방법론 때문이다. 최저임금제, 노동시간 단축 등 규제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사회주의적 성격의 처방이 역설적으로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 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곳에서 정부의 개입은 초기 시장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이미 시장이 형성된 곳에서 무리한 규제는 시장의 반격을 부르고, 기득권의 담장만 높일 뿐이다. 현 집권 세력은 노동시간을 반으로 줄이면 고용이 두 배로 늘어나고,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면 최저임금을 올리면 되고, 비정규직은 나쁘기 때문에 모두 정규직으로 끌어들이면 된다는 식의 발상을 하고 놀랍게도 이를 직접 실행에 옮겼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면 얼마나 쉽겠는가. 하지만 결과는 지난 2년간 목격한 그대로다. 남은 임기 동안 '일자리 정부, 일자리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면 이념을 앞세운 사회주의적 처방을 내려놓고, 시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억지로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미래 청년들이 낼 세금 부담만 키우며 '노량진 공시(公試) 낭인'만 양산할 뿐이다.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4차 산업 등에 젊은이들이 몰려들도록 해야 한다. 이익집단을 포함한 기득권층의 반발이 거세겠지만 이를 감당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도 국가 비상사태라 하지 않았는가. 좌파가 우파 정책을 가져다 쓰는 것이 실용주의다. 청년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줄 수 있다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무슨 상관인가.


조선일보 A31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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