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한과 핵협상, 새로운 방식이 좋을수도"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김진명 기자
입력 2019.09.21 03:00

'先핵폐기 後보상' 볼턴방식 비판… 北 "현명한 정치적 결단 환영"
美·北 '하나씩 주고받는 방식' 협상 가능성

北체제 보장·비핵화 병행 가능성… 트럼프 "어쩌면 강력한 공격할수도"
응하지 않으면 '더 센 제재' 시사, 北 "美 제대로 된 계산법 갖고와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 시각) 북핵 협상과 관련해 "'리비아 방식'을 언급했던 것이 우리를 지연시켰다"며 "어쩌면 새로운 방식(new method)이 매우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 모델'로 대표되는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 요구를 중단하고,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과 제재 해제를 북 비핵화 조치와 병행하는 단계적 해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해 온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환영한다"고 반겼다. 미·북 협상에서 북한 측 수석대표를 맡게 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2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핵 포기' 방식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조·미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주장했다는 보도를 흥미롭게 읽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캘리포니아주(州) 샌디에이고 국경 장벽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난 10일 경질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판하며 '새로운 방식'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년간 (북한의) 핵실험이 없었고, (북한에 억류됐던) 인질과 (한국전에서) 숨진 참전 용사들이 돌아왔다"며 "(북한과의) 관계는 좋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리비아 방식'을 사용하고 싶다고 말한 그 어떤 누군가(볼턴)보다 낫다"며 "그가 '리비아 방식'을 언급했던 것이 우리를 심하게 지연시켰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어쩌면 (새로운 방식은) 매우 강력한 공격일지도 모른다"며 "우리(트럼프 행정부)가 지금처럼 강한 군대를 가진 적이 없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방식'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강한 거부감을 보였던 '리비아 방식'을 비판하며 '새로운 방식'을 언급한 것 자체가 북한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고 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북한 김명길 순회대사는 당장 향후 협상에 대해 "미국이 제대로 된 계산법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리비아 방식'의 핵심은 체제 보장이나 제재 해제 같은 보상 조치 이전에 핵무기나 핵 물질, 핵 장비를 반출하는 데 있다. 리비아는 2003년 말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후, 2004년 1~9월 사이에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비롯해 핵무기 제조와 관련된 장비·서류 일체를 미국에 냈다. 미국은 핵 프로그램 반출이 이뤄진 이후인 2004년 9월 금융 제재를 풀고, 비핵화가 완전히 종료된 후인 2006년에야 리비아와의 국교 정상화 및 테러 지원국 해제를 했다. 볼턴은 이 방식을 지지하며 북한 핵무기의 반출이 보상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반발하며 볼턴을 '인간쓰레기' '흡혈귀'라고 비난했다.

지난 9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미·북 실무협상 재개 의사를 밝히면서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최선희는 당시 "미국 측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북·미) 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했었다. 이어 북한은 지난 16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명의의 담화에서 "우리의 제도 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체제 보장과 제재 해제가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北 김명길 대사

이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대북 보상 방안을 이번 실무 협상에 포함시키되, 의회에 보고해야 하는 제재 해제보다는 북·미 간 연락사무소 개설 같은 체제 보장 조치를 먼저 제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북이 하나하나씩 점진적으로 주고받는 방안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듯이 북한이 이 같은 타협안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강력한 군사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당근'과 함께 '채찍'을 동시에 내밀면서 대북 압박을 병행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미국의 이런 기류 변화를 적극 반겼다. 김명길 순회대사는 "우유부단하고 사고가 경직된 전(前) 미 행정부(관료)들이 지금 집권하고 있다면 의심할 바 없이 조선반도에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조성됐을 것"이라고 했다. 또 "조·미 쌍방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으며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취지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어 "나는 미국 측이 이제 진행되게 될 조·미 협상에 제대로 된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리라고 기대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낙관하고 싶다"고 했다.


조선일보 A1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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