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개 중국집이 불맛 겨룬다… '짬뽕의 도시' 군산

군산=김정엽 기자
입력 2019.09.20 03:01

[그곳의 맛] [15] 군산 짬뽕
화교들이 팔던 흰국물 초마면, 고춧가루 넣어 빨간국물 짬뽕으로
1961년 농지소유 금지되자 농사 짓던 화교들이 중국집 열어

풍부한 재료로 다양한 조리법 경쟁… 콩나물육수, 낙지·돼지고기 얹기도
작년 관광객 511만명, 2년새 두배… 市, 15억 들여 짬뽕거리 만들기로

전북 군산은 1899년 개항 후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했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몰려들고 각종 물산(物産)이 흘러들었다. 대전과 충남을 가로질러 400㎞를 굽이도는 금강도 군산에서 바다와 만났다. 사람과 바다, 물자가 섞이면서 새롭게 태어난 군산은 최근 10여 년 사이 '짬뽕 도시'로 거듭났다. 167곳이나 되는 중국집에서 저마다 다른 짬뽕을 내놓는다. 맛과 아이디어의 대결이다. 홍합과 조개가 산더미처럼 쌓인 짬뽕, 손바닥만 한 달걀 프라이를 얹은 짬뽕, 해산물 육수에 콩나물을 듬뿍 넣은 짬뽕이 나온다. 군산 짬뽕을 먹겠다고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온다. 콧대 높은 군산의 유명 중국집은 대부분 배달을 하지 않는다.

지난 16일 오후 2시 전북 군산시 금동에 있는 중국음식점 쌍용반점에서 고영수(68) 사장이 뜨겁게 달군 웍(속이 우묵한 중국식 냄비)에 짬뽕 재료로 쓸 야채를 볶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6일 오후 2시 전북 군산시 금동에 있는 중국음식점 쌍용반점에서 고영수(68) 사장이 뜨겁게 달군 웍(속이 우묵한 중국식 냄비)에 짬뽕 재료로 쓸 야채를 볶고 있다. 쌍용반점은 올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백년가게'에 이름을 올렸다. 왼쪽은 군산의 다양한 짬뽕. 홍합·바지락·동죽 등 여러 조개로 국물을 내는 쌍용반점 짬뽕(위), 볶음 짬뽕으로 불리는 별미고추초면(가운데), 콩나물을 듬뿍 넣고 낙지 한 마리를 통째로 얹는 콩나물짬뽕(아래). /김영근 기자
지난 5일 오전 10시 군산의 한 중국집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점심때가 한참 남았는데도 자리를 메운 손님들 앞에는 짬뽕이 놓여 있었다. 한 관광객은 "점심 무렵에는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 문을 열자마자 왔다"며 "해산물과 고기를 섞어 낸 국물 맛이 일품"이라고 말했다. 군산시는 짬뽕만으로도 연간 300억원의 경제 유발 효과를 올리는 것으로 추산한다. 직간접 고용은 500여 명이다. 군산을 찾는 관광객도 지난 2016년 221만명에서 지난해 511만명으로 2년 만에 배로 늘었다. 군산시 측은 '짬뽕의 힘'이 컸다고 본다. 채효 군산시 공보담당관은 "다양한 짬뽕 조리법을 개발해 늘어나는 관광객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했다.

군산 짬뽕의 역사는 주로 산둥성에서 건너온 화교들이 일으켰다. 개항 후 화교들은 짬뽕의 원조 격인 초마면(炒碼麵)을 만들어 팔았다. 초마면은 해물과 고기, 다양한 야채를 기름에 볶아 닭이나 돼지 뼈로 만든 육수를 넣고 끓인 다음 면을 넣어 말아 먹는 요리다. 고춧가루 대신 후춧가루만 넣어 먹었다. 이때만 해도 흰 국물이었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고춧가루를 넣으면서 빨간 국물인 짬뽕이 됐다. 군산에서 짬뽕을 파는 중국집이 급증한 것은 1961년 외국인 토지법 제정 이후다. 화교의 농지 소유를 금지한 토지법 때문에 농사를 짓던 화교들이 너도나도 중국집을 열었다. 여건방(72) 군산화교역사관장은 "웍(속이 우묵한 중국식 냄비)과 중식도(中食刀) 한 자루만 있으면 굶어 죽을 일이 없었다"며 "중식당이 대중화하면서 한때 고급 요리였던 중식이 서민들도 쉽게 찾는 음식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 '타짜'의 촬영지로 유명한 전북 군산의 '빈해원'. 화교인 왕근석씨가 1950년대 창업한 중국음식점으로, 지난해 8월 문화재청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군산시
특히 군산은 바다와 육지에서 난 농수산물이 풍부해 맛 경쟁이 더욱 치열했다. 중국집마다 손님을 끌어들이려고 각종 조리법을 개발했다. 군산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집인 복성루에선 홍합·바지락·동죽 등 해산물로 국물을 내고 거기에 돼지고기를 얹는다. 돼지고기 볶음을 따로 해서 올리기 때문에 해산물 특유의 시원한 국물 맛이 유지된다. 영화 '타짜'의 촬영지로 유명한 빈해원에선 국물이 없는 짬뽕을 만든다. 전복·오징어 등 해산물을 채소와 함께 센 불에 볶은 다음 굵직한 면과 고추기름을 넣고 다시 볶아 내놓는다. 별미고추초면이란 이름의 이 메뉴는 볶음 짬뽕이라 부르기도 한다.

콩나물을 듬뿍 넣고 낙지 한 마리를 얹는 왕산중화요리, 동죽과 바지락 등 조개로만 국물을 내는 쌍용반점, 널찍한 쟁반에 짬뽕을 담아 내는 영동반점도 맛 대결에서 뒤지지 않는다. 고영수(68) 쌍용반점 사장은 "갖가지 해물과 야채를 볶은 다음 전분을 듬뿍 넣어 걸쭉하게 만들어 내는 물짜장도 짬뽕을 응용해 만든 요리"라며 "유명한 짬뽕집들이 쉼없이 경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맛과 서비스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시는 짬뽕이 인기를 이어가도록 유명한 짬뽕집이 모여 있는 장미동 일대를 짬뽕 특화 거리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거리 이름은 '짬뽕시대로(路)'라고 붙였다. 연말까지 사업비 15억원을 들여 편의 시설을 만들고 간판을 정비할 예정이다. 특화 거리에 입점하는 중국집은 상수도 사용료를 감면해주고, 음식 재료를 공동으로 구매하도록 예산도 지원한다. 유명한 요리사를 초청해 짬뽕 페스티벌을 열고, 맛 지도를 제작해 소셜미디어에 홍보할 방침이다.

군산 짬뽕 맛을 쉽게 내도록 라면도 개발됐다. 군산 지역 농협과 군산대가 공동으로 개발한 '군산 짬뽕라면'이다. 군산에서 난 흰찰쌀보리와 밀을 섞어 만든 면에 짬뽕 맛 수프가 들어갔다. 연말쯤엔 시제품을 내놓고 군산 지역부터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강임준 군산시장은 "짜장면 인기에 짜장면 박물관까지 생긴 인천처럼 군산도 짬뽕 도시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라며 "올해 안에 만들어질 짬뽕거리 인근엔 동국사와 히로쓰 가옥 등 근대 역사 문화 자원이 풍부해 관광객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곳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16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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