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감염 경로도 모르는 데 백신조차 없어”…초비상 연천 돼지농가, 유일한 대책은 ‘봉쇄’

연천=권오은 기자 연천=우연수 인턴기자(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졸업)
입력 2019.09.18 16:27 수정 2019.09.18 16:35
ASF 발병 연천 돼지농장, 300m 앞부터 통제
농장주 "1주일에 3번씩 소독했는데…원인 모르겠다"
감염경로 ‘오리무중’에 백신도 치료제도 없어
대책 없는 농장주의 선택은 ‘봉쇄작전’…자체 방역 나서
전문가 "경기 북부 돼지만 죽이냐, 전국 돼지 다 죽이냐 기로"

18일 경기 연천군의 한 돼지농장 인근. 파주시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 이 돼지농장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농장에서 300m 떨어진 길목을 방역대원 2명이 지키고 서 있었다. 노란색 방역복을 입은 방역대원들은 돼지농장 방향 길로 들어서는 차량을 멈춰 세우고 "무슨 일이십니까"라고 물었다. 피해 농장 인근에 사는 주민과 근로자를 제외한 외부인 출입은 철저히 통제됐다.

방역대원들은 농장을 드나드는 차량엔 모두 소독액을 뿌렸다. 치사율 100%로 ‘돼지 흑사병’으로 불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더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다른 방역차 한 대는 주변 도로를 달리며 소독약품을 뿌리고 다녔다. 소독약품과 섞을 물이 바닥을 보이자 소방 급수차가 출동해 물을 채워 넣기도 했다. 볕이 뜨거운 날씨였지만, 바닥엔 소독액 웅덩이가 고였다.

18일 오후 경기 연천군의 한 돼지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해 방역당국이 주변을 통제하고, 소독액을 뿌리고 있다. /권오은 기자
◇감염 경로도 모르고 백신도 없어…유일한 대책은 ‘봉쇄’
발병 농장 인근에서 농기계를 정비하던 한 주민은 "(피해 농장은) 이장님과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데 며칠째 울타리를 치면서 대비하느라 바빠 보였다"며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피해 농장주 A씨는 25년 동안 농장을 운영해왔다고 한다. 아들도 2년 전부터 함께 일하며 가업을 배웠다.

지역 돼지농장주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건 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방역당국도 아직 감염경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A씨의 농장은 울타리가 설치돼 있어 아프리카돼지열병을 가진 동물과 접촉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 다른 발병 요인으로 꼽히는 ‘잔반’(남은 음식물)을 돼지에게 먹이는 일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날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파주시 돼지농장과 특별한 연관 관계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5명 중 네팔 출신 4명이 4개월 전쯤 고국을 다녀왔지만, 네팔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국가가 아니다. 피해 농장주 A씨는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통화에서 "1주일에 3번씩 농장을 소독했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짐작 가는 바도 없다"고 말했다.

파주시와 연천군 모두 북한과 접경 지역이라는 점에서 강물이나 태풍, 멧돼지 등을 통해 지난 5월 북한에서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졌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예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18일 경기 연천군의 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해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농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사람에겐 영향이 없지만, 백신도 치료제도 없어 돼지에겐 치명적 질환이다. 하지만 왜 발병했는지 짐작조차 못하는 탓에 초비상이 걸린 지역 농장주들이 선택한 대책은 ‘봉쇄’였다. 피해 농장의 반경 1km 내에 있는 다른 돼지농장의 입구 역시 긴 울타리로 막혀 있었다. 오른쪽엔 방역실, 왼쪽엔 소독을 위한 도구가 놓여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은 탓에 안에서 들려오는 굉음의 기계 소리만이 바쁜 농장 상황을 짐작게 할 뿐이었다.

이날 직접 만나거나, 통화한 연천군 돼지 농장 관계자들은 모두 말을 아꼈다. "방역 대비로 너무 정신이 없다" "다 소독하러 나가서 농장 일을 알만한 사람이 없다" "우리가 무엇을 알겠나"라고 말했다. 연천군 발생농가 인근 한 농장주는 "지금 무슨 말을 더 하겠나"라며 "부는 바람도 신경 쓰인다"고 했다.

18일 경기 연천군의 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해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살처분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병 농장 반경 수십㎞내 돼지 모두 살처분해야" 주장도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연천군 피해 농장 반경 3km 내에 5500마리 규모의 3개 농가도 예방적 살처분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 사이에선 더 적극적인 살처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지난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국가적 재난이 시작됐다"며 "초반에 이 열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발병 농장의 반경 수십 km 내에 있는 돼지를 안타깝지만 전부 폐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1차 감염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2차, 3차 감염을 막기 위해 강력한 초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도 "경기 북부의 돼지들만 죽일 것이냐, 아니면 우리나라 전국의 돼지를 죽일 것이냐 하는 기로에 놓였다고 본다"고 했다.

하지만 농장주들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살처분이 불가피한 것을 이해하면서도, 정작 살처분 범위에 포함될까 걱정스럽다는 반응이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진 구제역 사태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에서 350만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됐다. 연천군에도 2010년 12월 구제역이 발병해 농가 1곳을 빼고 모두 살처분했다고 한다.

성경식 대한한돈협회 연천지부 지부장은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살처분 이후가 문제"라며 "다른 지역에서 어미돼지를 사와 번식을 시키고, 길러서 다시 판매할 때까지 약 1년 동안 치러야 하는 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성 지부장은 또 "(2010년) 구제역 때 모두 한 번에 돼지들을 묻어버렸다가 다시 기르니, 출하 시기가 겹쳐 돼지값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며 "지역 농장주들은 살처분 범위에 포함될까봐 좌불안석"이라고 했다.
구제역과 달리 살처분 후 다시 어미돼지를 들여올 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도 큰 걱정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동물 사체 내 실온에서 18개월가량 살아남는 것으로 알려졌다. 냉장 상태일 때는 6년을 버틴다고 한다. 성 지부장은 "다시 돼지를 들여와도 또 남은 바이러스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고 했다.

방역당국과 피해 농장주 A씨와 협의 끝에 돼지들을 살처분한 뒤 A씨의 농장에 묻기로 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잔존 기간이 길어 돼지 농장을 피하고 싶지만, 마땅한 대체 부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돼지 농장을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A씨. 그는 "당장 무슨 대책을 생각하겠어요"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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