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이름으로 左右가 싸웠던 '1945'의 비극… 지금은 어떤가요?

김경은 기자
입력 2019.09.18 03:00

배삼식&최우정 - 오페라로 재탄생하는 '1945'
광복 후 귀향 꿈꾸던 민초 이야기… 원작자 배삼식이 대본 직접 개작
작곡 최우정은 창가·동요 차용해 연극 대사를 오페라 곡으로 바꿔

"거창한 아리아나 명곡은 없다… 당시의 희로애락 느낄 수 있게
1940년대에 유행했던 군가와 한번쯤 들어봤을 노래로 구성"

1945년 광복 직후 만주의 전재민(戰災民) 구제소. 일본군 위안소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탈출한 조선인 분이와 일본인 미즈코는 이제 헤어져 제 갈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아비가 누군지 모를 아이까지 밴 미즈코를 차마 버리지 못한 분이는 그를 말 못하는 동생이라고 속여 구제소에 데려가고, 둘은 그곳에서 자신들을 괴롭혔던 여성 포주 박섭섭과 마주친다. 치솟는 분노. 하지만 조선인만 탈 수 있는 기차를 타고 조선에 돌아가려면 그들 몸에 새겨진 끔찍한 지옥은 잠시 모른 체해야 한다.

2017년 국립극단이 초연해 그해 최고의 연극으로 주목받았던 연극 '1945'가 오페라로 새롭게 태어난다. 국립오페라단은 오는 27~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원작자 배삼식(49)이 대본을 쓰고 작곡가 최우정(51)이 곡을 붙인 오페라 '1945'를 선보인다. 광복 원년,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조선행 열차를 타려고 머물던 전재민 구제소를 배경으로 시기와 욕망, 배척이 뒤엉킨 민초들 삶을 생생히 그려낸 작품이다. 지식인 구원창, 살림꾼 아내 김순남, 최고령자 이노인, 분이에게 순정을 보이는 오인호, 하루살이 정(情)을 나누는 장막난과 박섭섭 등 오색 인간 군상이 서성인다.

지난 11일 국립오페라단에서 만난 작곡가 최우정(왼쪽)과 극작가 배삼식. 최우정은 배삼식의 ‘1945’ 대본을 읽고 국립오페라단에 ‘1945’를 오페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차범석희곡상 수상자 배삼식이 원작 '1945'의 대본을 4막짜리 오페라로 직접 개작했다. 최우정은 오페라 '연서'와 음악극 '적로' 등 극음악을 다수 썼다. 연출은 고선웅(51), 지휘는 정치용(62)이 맡는다. 지난해 '적로'로 이미 합을 맞춰본 배삼식과 최우정은 지난 11일 국립오페라단에서 "서로가 뭘 말하고 싶은지 우린 마음으로 아는 사이"라며 "음악성을 살린 가사, 이야기를 실은 선율이 만났기 때문에 작업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서울대 인류학과와 한예종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한 배삼식은 '벽 속의 요정' '하얀 앵두' 등을 쓴 국내 대표 극작가다. 그는 "선(善)과 정의의 이름으로 참혹한 폭력을 서로 저지른 게 불과 100년도 안 됐는데, 우리는 그 참혹함을 벌써 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현대사에서 중요한 순간이자 현재의 많은 모순이 태어난 시점인 1945년에 대한 이야기"는 그러한 안타까움에서 나왔다. 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 염상섭의 '삼팔선' 등 문학 작품을 읽으며 해방 전후는 오늘날 그 시대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단순한 논법보다 훨씬 더 다층적이란 걸 깨달았다. "한반도도 중국도 아닌 회색지대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친 사람들의 삶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한 인물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인상만으로 판단하는 건 손가락으로 '좋아요' 하나 누르고 타인을 맘대로 재단하는 것처럼 위험하니까요."

지난 1년간 작곡에 매달린 최우정은 "거창한 아리아나 길이 남을 명곡을 쓴다는 포부는 없었다"고 했다. "어차피 인간의 삶은 산만해요. 오페라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1940년대에 유행한 창가와 군가, 동요 '엄마야 누나야', 전래동요 '두껍아 두껍아', 엔카 등 한국인이면 한 번쯤 들어봤을 노래들을 골고루 넣은 건 그 때문이에요. 당시 민중들 삶에서 살아 꿈틀댄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게."

찢기고 갈라진 구제소에서도 여인들은 생계를 위해 떡을 만들어 판다. 오래전 잃어버린 한때처럼 쌀을 일고 불을 때고 떡을 밟으며 현실의 고통을 잊는다. 배삼식은 "예술은 궁극적으로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며 "만주 벌판으로 노을 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는 피란민들의 심정이 음악만으로 충분히 얘기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고 했다. 1588-2514


조선일보 A20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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