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 수령님을 위해 건배!… 우리를 떨게하는 미래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19.09.18 03:11
김규나 소설가

우리를 공산주의로 이끌었던 수십 가지 동기 가운데 나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였다. 우리는 사람이나 사물의 운명을 실제로 결정했다. 내가 빠져 있던 것은 권력의 도취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역사라는 말 잔등에 올라탔다는 사실에 취해 있었다. 추악한 권력을 향한 탐욕으로 변해버리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때는 우리가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환상이 나에게 있었다.

- 밀란 쿤데라 '농담' 중에서.

여학생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엽서에 폼나게 적어 보냈던 '트로츠키 만세!' 한 줄이 스무 살 청년의 인생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자신도 공산주의자였지만 공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던 루드비크는 스탈린이 정적으로 삼았던 자의 이름을 넣어 농담했다는 이유로 사상을 의심받아 친구들에게 버려지고 당에서도 쫓겨난다. 탄광에 강제로 끌려가 몇 년이나 보내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하고 미래도 빼앗긴다.

밀란 쿤데라가 196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농담'은 개인과 자유를 말살하는 공산주의 사회의 공포를 잘 보여준다. 루드비크는 친구라 믿었던 이들이 인민재판에 자신을 세우고 추방을 선고하던 순간의 충격을 평생 잊지 못한다.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천명한 법무부 장관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사회주의의 궁극적 목표가 공산주의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학가에 인공기와 김일성·김정일 사진을 내건 주점이 문을 열 예정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철거하겠다고 주인이 말했다지만, "문제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는 반응이 더 놀랍다. 술집 콘셉트가 흥미롭다는 일부 사람의 관심과 홍보 효과를 위한 것이니 죄가 되지 않는다는 법 전문가들의 논평도 당혹스럽다.

공산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우정과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당에 고발당하는 건 아닐까, 친구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연인과 속삭일 수도 없는 세상에서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산당에 대한 찬양뿐. 대학가 주점에서 "수령님을 위하여 건배!"를 외치는 청년들 모습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인가, 걱정이 앞선다.


조선일보 A29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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