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케이블카

박은호 논설위원
입력 2019.09.18 03:16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엔 호수와 3000m 고봉이 즐비한 '돌로미티' 산악 지대가 있다. 설악산 세 배 남짓한 면적 거의 전부가 유네스코 자연유산인데도 100개 넘는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다. 높은 산에 올라 트레킹을 쉽게 하도록 케이블카를 세 번 갈아타고 산 정상까지 가는 노선까지 있을 정도다. 어느 분은 이곳에 다녀온 뒤 '케이블카에 타니 마치 신(神)의 눈으로 알프스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고 썼다.

▶스위스는 케이블카로 관광 대국이 됐다. 인구 6000명인 작은 산골 마을에 연간 100만명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기도 한다. 국토 60%를 차지하는 산지 곳곳에 케이블카 2500개를 깐 덕이다. 호주 북부 쿠란다국립공원에는 아마존보다 6000만년은 더 된 세계 최고(最古) 열대우림이 있다. 호주 관광청에 따르면 한 해 관광객 200만명이 이 열대우림 상공을 40여분 운행하는 세계 최장(7.5㎞) 케이블카에 올라타 비경을 즐긴다고 한다. 일본에도 29개 국립공원에 40여개 케이블카가 있다.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은 1979년 개혁·개방 초기에 황산(黃山)을 찾아 "관광 자원 개발과 자연환경 보전이 동시에 가능한 대책을 세우라"고 했다. 중국 정부는 '산 위에서 즐기되 잠은 내려와 잔다'는 원칙 아래 1986년부터 황산에 4개 케이블카 노선을 깔았다. 산 정상부에선 돌로 포장된 등산로 통행만 허용한다. 영화 '아바타' 배경이 된 장자제(張家界)에도 7455m 케이블카가 깔려 있다.

▶환경부가 그제 강원 양양군이 신청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부동의' 결정을 했다. 전 정부가 2015년 환경 훼손 최소화,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설악산 오색~끝청 하단까지 3.5㎞ 설치를 승인한 것을 4년 만에 백지화시킨 것이다. 이 정권은 작년부터 설악산 케이블카를 '환경 적폐'라며 공격해왔다.

▶국립공원 케이블카엔 찬반이 있을 수 있다. 스위스는 알프스 남쪽 지대엔 케이블카를 허용하면서 국립공원이 있는 북쪽엔 환경 보전이 우선이다. 설악산은 한 해 300만명 등산객이 몰려 탐방로와 동식물 서식지 훼손이 심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면 오히려 케이블카가 환경 훼손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오색~끝청 하단 노선은 동해와 공룡능선, 천불동 계곡 같은 비경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환경 적폐' 운운의 정치가 아니라 알프스처럼 국립공원도 지키고 멋진 경관도 선사하는 명품 케이블카를 만들 수는 없나.


조선일보 A30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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