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검찰 개혁을 바란다면 이재수 묘를 참배해야 했다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입력 2019.09.18 03:17

국민의 '검찰 개혁'은 권력의 사냥개를 국민의 충견으로 만드는 것이다
조국이 주장하는 개혁은 국민과 반대다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조국 법무장관이 한 검사의 묘소를 참배했다. 상관에게 시달리다 2016년 '물건 못 파는 영업사원 심정'이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뜬 초임 검사였다. 조 장관은 "검찰 조직 문화를 바꾸겠다"고 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상관은 해임됐고 후배가 선배를 평가하는 다면 평가 제도가 도입됐다. 이젠 선배의 갑질보다 후배의 웰빙을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한 전직 검사는 조 장관의 퍼포먼스를 두고 "조국스럽다"고 했다. 적절한 표현이다. '어니언 조'라는 별명처럼 그의 다중 인격을 포괄할 단어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조국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극에 대한 예의까지 쇼로 여기고, 조국이기 때문에 그 쇼에서 저의(底意)를 읽는다. 전 정권의 비극을 끄집어내 젊은 검사를 내 편으로 만들고, 그들을 통해 조국 일가를 수사 중인 검찰 지휘부의 권위를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조국 수사를 간접 비판한 '내부 고발의 달인(達人)'을 '개혁 검사'의 상징처럼 특정한 것도 공사(公私) 양면에서 조 장관이 향하는 방향을 알려준다.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할 조국씨를 법무장관 자리에 올렸을 때 권력자가 한 말은 '검찰 개혁에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도 조국씨를 경멸하지만 검찰 개혁에 찬성하기 때문에 장관 임명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 그를 인격체가 아닌 수단으로 삼아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 부정한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을 때 직면하는 '더러운 손' 딜레마다. 그러면 그 '더러운 손'이 추구하는 목적은 정의로운가. 국민은 검찰이 '권력의 사냥개'에서 '국민의 충견(忠犬)'으로 변하는 것을 정의로운 개혁이라 여긴다. 권력의 휘파람 소리에 맞춰 정적을 무참하게 물어뜯고 인격을 말살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검찰의 행태를 멈추라는 것이다.

조 장관이 생각하는 검찰 개혁이 국민이 생각하는 개혁이라면 그의 행동은 달라야 했다. 청와대 하명 수사와 검찰의 망신 주기로 세상을 뜬 이재수 기무사령관, 어린 자녀가 있는 집에서 압수 수색을 당하고 투신한 변창훈 검사의 묘소를 참배해야 했다. 대통령 한마디에 갑질 피의자로 전락하고 별건 수사 폐습의 무고한 희생양이 된 박찬주 예비역 대장을 찾아가 사죄해야 했다. 이들의 수모를 기획한 당시 청와대 핵심은 누구였나. 조 장관은 가족이 고통받고 있다고 울먹였지만 이들이 당한 수모와 비교하면 '황제 수사'가 명백하다. 조 장관이 검찰 개혁을 주장하려면 먼저 이들의 비극과 고난에 대해 용서를 구했어야 한다.

검찰 개혁은 권력이 인사권을 내려놓는 데에서 출발한다. 권력이 인사권을 독점하는 한 검찰은 권력의 수족이 될 수밖에 없다. 조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도 검찰 수뇌부 인사가 일단락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가 있다. 인사 이전에 조국 문제가 발생했다면 수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국 일가에는 불운이지만 한국 사회에는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권력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검찰도 살아 있는 괴물의 악행을 단죄하는 공동선(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 장관의 검찰 개혁은 거꾸로다. 장관 취임 직후 자신의 검찰 인사권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법무장관의 인사권 강화는 대통령의 인사권 강화다. 장관이 조국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조 장관은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지시를 쏟아내고 있다. 검찰 개혁 추진 지원단과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설치, 검찰의 직접 수사 축소, 검찰 개혁을 위한 검사와의 대화와 국민 의견 청취, 피의 사실 공표 금지 등이다. 재·삼탕의 잡다한 내용을 걷어내면 핵심은 이렇다. 검찰에 대한 권력의 통제를 강화하고, 검찰의 위계를 무너뜨려 특정 정파가 지배하는 파괴적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향은 수사를 받고 있는 조국 일가의 사적 이해와 연결된다. 검찰의 힘을 빼는 것은 수사의 힘을 빼는 것이다. 장관이 보고를 안 받는다고 수사가 독립되지 않는다. '윤석열 배제' 파문이 증명한 대로다. 조 장관이 "검찰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며 달려든 순간 "검찰은 검찰의 일, 장관은 장관의 일을 하면 된다"는 대통령의 말은 공염불이 됐다. 법무장관으로서 조국씨의 모든 공무(公務)는 이해 충돌에 해당한다.

조국씨가 물러나야 하는 이유는 뒷구멍으로 저지른 일가의 과거사 때문만은 아니다. 조 장관은 매일 반복하는 이해 충돌로 다른 차원의 과거사를 축적하고 있다. 이러다 피의자가 되면 대한민국 공직 윤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물러나라. 일생 한 번이라도 공익을 사익에 앞세우기 바란다.



조선일보 A30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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