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수 톱모델의 또 다른 이름, 싱글맘

최보윤 기자
입력 2019.09.17 03:00

'아메리칸 뷰티'의 정석 캐럴린 머피

에스티로더·막스마라… 럭셔리 브랜드의 상징
"열 여덟살 우리 딸은 내 인생의 산소마스크… 얼굴과 마음의 주름 그대로 두세요"

이름은 몰라도 그녀의 얼굴은 한 번쯤 마주쳤을 것이다. TV든 지하철이든 버스든 패션잡지든 전 세계 광고판이면 어디든 그녀의 얼굴이 나온다. 유명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에서 20년간 모델로 활동하며 업계 '최장수 모델'을 기록했고 캘빈 클라인·돌체앤가바나·지방시·베르사체·티파니 등 내로라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얼굴이 됐다. 열여섯 살에 발탁돼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아메리칸 뷰티'의 정석으로 불리는 그녀, 바로 캐럴린 머피(46)다.

최근 서울 청담동 막스마라 플래그십 스토어 개장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찾은 수퍼모델 캐럴린 머피를 단독으로 만났다. 광택이 도는 막스마라 은회색 셔츠와 베이지톤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우아함 그 자체'라는 칭송답게 사뿐한 걸음을 옮겼다. 가느다란 목소리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웠고, 에메랄드 눈동자는 깊고 맑았다. "비빔밥과 김치에 심취해 신나게 먹느라고 화장이 지워진 줄도 몰랐다"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콤팩트를 꺼냈다. 에스티로더가 그녀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①최근 촬영한 티파니 광고. ②캐럴린 머피는 "내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며 "채소 주스에 스크램블 에그와 시금치, 훈제 연어, 페타치즈, 아보카도를 곁들인 아침 식사를 즐긴다"고 말했다. ③엘르 프랑스판 커버. ④20년간 에스티로더 모델로 활동했다. ⑤21세에 찍은 프라다 광고. /김지호 기자· 캐럴린 머피 인스타그램·프라다

미 경제 전문 포브스지가 선정한 '몸값' 높은 세계 톱모델 7위에 오른 머피지만, 처음부터 대로가 열린 건 아니었다. "패션쇼 무대에 서는 데만 5년이 걸렸어요. 키(175㎝)가 아주 큰 것도 아니고 모델 하기엔 너무 반듯하게 예쁜 얼굴이라며 거절당했지요." 좋아하는 일이라 포기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내성적이거든요. 요즘같이 인스타그램 스타일의 자기 홍보가 강한 시기에 데뷔했다면 지금 같은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가장 창의적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내면을 키워왔기에 변화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인터넷에 익숙지 않다며 손사래 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36만명이다.

가녀린 듯 강인해 보이는 말투는 '엄마'라는 단어에서 강한 악센트가 붙었다. 모델이자 사업가, 글쓰기를 좋아해 뉴욕 작가협회에도 등록한 그녀는 18세 딸을 키우는 싱글맘. 딸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남편과 이별한 그는 지금까지 딸과 둘이서 산다. "엄마가 된다는 건 비행기 추락 직전 내려온 산소마스크를 쓰는 것처럼 아이가 제 삶의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생명줄 같은 것이죠. 동시에 저는 딸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죠. 딸을 위해, 제 커리어를 위해 오랜 기간 온 인생을 바쳤어요. 그러다 어느새 지쳐 흔들리는 저를 발견하게 됐지요. 그 모든 것 앞에 나를 먼저 챙겨야, 내가 제대로 살아야 일도, 자녀도 잘 돌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5분 단위로 쪼개 쓰며 코르셋처럼 옥죄던 일정도 마음에서 삭제해버렸다. 매일 아침마다 따뜻한 차 한 잔에 뉴욕타임스를 펼쳐놓고 아트, 스타일, 비즈니스 섹션 순서대로 읽으며 마음에 '즐거움'을 채워넣는다. 가끔은 서핑을 하기 위해 몇 달간 일을 쉬기도 하고, 좋아하는 초콜릿 바도 기꺼이 꺼내 먹는다. "스스로에게 덜 엄격해지는 것이죠. 얼굴의 주름도, 마음의 주름도 그냥 가는 대로 두는 게 아름답게 늙는 비결인 거 같아요. 집착하지 않고 자연스레 놔두는 거죠.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답변을 모두 긍정적으로 바꿔보니 일에도 자신감이 붙고, 표정도 달라졌지요."

한 가지는 무조건 빼먹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10분간의 명상이다. "매일 단 10분이라도 당신만을 위해 투자해보세요. 목욕하면서 명상하면 1석 2조겠네요. 복잡한 문제도 어느덧 풀리고, 증오와 미움의 마음도 씻겨 내려가거든요."


조선일보 A20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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