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맘카페'

박은호 논설위원
입력 2019.09.16 03:16

'시댁 밥 먹고 체했다' '밥하는 기계가 된 거 같아요' '모유가 너무 적은데 조언 좀'…. 회원 280만명이 넘는 한 맘카페 게시글이다. 육아 고민, 신세 한탄, 시댁 험담 같은 온갖 글이 '초' 단위로 올라왔다. 2003년 이 카페가 문을 연 뒤 지금껏 2608만개 글이 게시됐다고 한다. 16년간 날마다 4500개 넘는 글이 올라온 셈이다. 주부들이 온갖 집안 대소사와 깨알 정보를 주고받던 동네 빨래터가 수십 개는 모여 있는 듯하다.

▶맘카페는 주로 30~40대 기혼 여성들이 육아·출산 정보나 자녀 교육, 요리, 부동산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온라인 공간이다. 2000년대 초 국내 포털이 만든 '온라인 카페'에서 태동해 지금은 2만 개는 너끈히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회원수가 10만명을 웃도는 전국 단위 맘카페가 수십 개 되고, 200만~300만 회원을 자랑하는 거대 맘카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각각 수십만명, 일반당원까지 합치면 350만명 안팎이다. 웬만한 정당 파워를 능가할 수 있다.

▶처음엔 주로 생활 정보를 주고받던 맘카페 성격이 달라진 것은 전국 대부분 동과 구마다 '지역 밀착형' 맘카페가 생기면서부터다. 관내 학원과 식당, 상점 사이에선 맘카페에 한번 찍히면 가게를 접어야 한다는 인식까지 생겼다고 한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멋대로 퍼지면서 부작용도 뒤따랐다. 작년 경기도 김포에서 한 어린이집 교사가 맘카페의 허위 정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까지 한 사건도 있었다.

▶맘카페의 정보 유통 권력은 '상업화'로 이어졌다. 맘카페에 붙는 배너 광고는 한 달 수십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광고 좀 내라"는 요구를 거부할 만큼 배포 큰 식당은 많지 않다고 한다. 돈벌이가 되자 한 사람이 4~5개 맘카페를 동시에 운영하는 현상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런 맘카페가 이젠 '사상 검증' 장소로까지 변질됐다. 정부나 조국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 운영진이 '카페 운영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글을 삭제하거나 카페에서 강제 퇴출시키는 식이다. 해외 직구 정보를 주고받는 어느 맘카페 회원은 "언젠가부터 카페를 '조국 지지파'들이 장악해 카페가 정치 사이트처럼 변해 탈퇴해 버렸다"고 했다. 자유롭게 회원 가입을 허용하다 최근 '아파트 관리비 영수증' 같은 증빙 서류를 내도록 한 카페까지 나타났다. "좌파들이 몰려와 게시판에 온갖 정치 글, 비난 글을 도배한다"는 이유에서다. 맘카페가 쉬는 곳이 아니라 전쟁터가 됐다.




조선일보 A30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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