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칼럼]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입력 2019.09.16 03:17

정의·공정, 한국인의 역린… 건드리면 누구도 못 살아 남아
조국, 최악 언행 불일치·위선… 厚黑의 최고봉
천하가 不義로 신음, 촛불이 암흑서 나라 구할 때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조국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증거인멸 시도와 사모(私募) 펀드 수사가 '조국 게이트'로 비화하는 중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가 현실이 되는 악몽의 연속이다. '범죄 피의자'가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으로 등극해 자신에 대한 수사를 방해한다. 공정과 정의의 깃발은 시궁창에 처박혔다. '민중은 어차피 개·돼지이므로 적당히 짖어대다 말 것'이라는 영화 대사를 문재인 청와대는 믿는 것 같다. 살아 있는 권력의 파멸적 오만이자 치명적 오판이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은 문재인 정권의 돌이킬 수 없는 내파(內破)를 뜻한다.

정의와 공정은 한국인의 역린(逆鱗)이다. 그걸 건드리는 자(者),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 대법원과 역사가 정죄(定罪)한 전두환은 '전(全) 재산 29만원'으로 아직까지도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다. 유승준(스티브 유)은 병역 회피로 국민을 우롱해 17년째 입국 금지다. 정유라는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너희)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 폭탄과 입시 부정으로 박근혜 탄핵의 문을 열었다. 열성 지지층이 쌓은 박근혜의 철옹성은 민심의 격류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민심은 단순한 주관적 감정이 아니다. 한국인의 강력한 정의감과 평등 의식은 잘못된 현실을 혁파(革罷)하는 최대의 에너지다.

조국 사태는 한 개인이나 가족의 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연루된 한국 사회 욕망의 지형도를 압축해 보여준다. 대학 입시는 치열한 계급투쟁의 최전선이다. 정교한 입시제도가 사회적 격차를 확대 재생산한다. 합법을 빙자한 불공정의 그물망이 학벌 사회를 낳고 신분 세습을 정당화한다. 조국과 그 가족은 합법적 불공정을 최대한 악용한 역대급 '생활의 달인'이다. 진보 귀족 조국의 출현은 대한민국 헌법이 부인한 '사회적 특수 계급'의 존재를 벼락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거시적 구조 분석을 앞세워 조국 개인의 구체적 불법과 비리를 면책(免責)하려 드는 담론은 어불성설이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지난 20년 동안 조국처럼 문제가 많은 공인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인물을 중용(重用)하면서 촛불 정부의 '원리·원칙'이라고 미화해 주권자들을 모욕하였다. 쓰디쓴 환멸과 차가운 분노가 민심을 휩쓸고 있다. '문재인·조국 공동 정권'의 출범은 촛불 정신을 거역한 자기 배반의 길이다. 이제 진정한 정치는 사라졌다. 장기 집권을 위한 패권 정치와 권력공학만 남았다.

문재인 정권은 공정과 정의를 참칭하면서 조국을 촛불의 상징으로 찬미해 왔다. 하지만 조국은 최악의 언행 불일치와 위선으로 촛불 정신을 능욕하였다. 온갖 궤변으로 그를 옹위한 명망가들의 말은 힘을 잃었고 진보의 도덕성도 소멸했다. 조국은 후흑학의 창시자 리쭝우(李宗吾)의 잣대로 후흑(厚黑)의 최고봉이다. 뻔뻔함(面厚)과 음흉함(心黑)에도 빛나는 얼굴을 과시하며 '철면피도 아니고 흑심도 없다'(不厚不黑)며 국민을 현혹한다.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박살 낸 문재인·조국 정권이 촛불로 조국(祖國)을 개혁하겠다고 나서는 풍경이야말로 후흑의 절정이다.

조국 사태는 한국 사회의 신뢰 자본에 결정타를 가했다. 한국은 경제력·군사력·문화력 등 종합 국력에서 세계 10위권임에도 사회적 신뢰지수는 매우 낮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2018년 부패인식지수로 세계 45위다. OECD 국가 중에서 최저 수준이다. 전형적인 저신뢰 사회에서 한국인은 '모두가 모두에게 늑대가 된다.' 문재인·조국 공동 정권은 한국 사회의 총체적 아노미(anomie·무규범 상태)를 무한대로 증폭시켰다. 이제 우리는 어떤 아름다운 말도 믿지 않는다. 무법(無法) 상태가 초래할 사회 윤리 붕괴의 지옥문을 대통령이 직접 열었다.

민심의 분노에 놀란 문 정권은 조국 사태를 생사를 건 적(敵)과 동지의 정치 싸움으로 갈라치려 한다. 정권 지지자들도 권력 투쟁에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상대를 말살하려는 적대 정치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논리다. 민주공화정이 벼랑 끝에 섰다. 천하가 불의(不義)로 신음하고 있다. 문재인·조국 정권과 박근혜·최순실 정권은 다르지 않다. 일찍이 김대중 전(前)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라고 갈파했다. 그렇다.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촛불만이 나라를 암흑에서 구한다. 우리는 '동물농장'의 개·돼지가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촛불 시민이다.
조선일보 A30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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