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부러지는 전업주부 형님, 좌충우돌 직장맘인 나는 부러웠지만…

입력 2019.09.07 03:00

[아무튼, 주말-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일러스트= 안병현
21세기에 가장 귀한 덕목은 충과 효가 아닙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쿨한 마음, 그리고 상대방이 이뤄낸 것들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겸손한 마음이지요. 이 두 가지 마음을 갖는다면 싸울 일이 뭐가 있을까요? 화성에 사는 전업주부 형님과 금성에 사는 워킹맘 아우도 좋은 케미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서로 인정하고, 감사한다면…. 그런데 그게 쉽진 않죠. / 홍여사

저는 결혼 15년 차의 평범한 직장맘입니다. 남편은 2남 중 차남이니, 저는 막내며느리고 제 위로 네 살 많은 손위 동서, '형님'이 계시지요. 실은 남자친구의 가족들에 대한 얘기를 본격적으로 귀담아듣게 되었을 때부터, 저는 다른 어느 분보다 이 예비 형님이라는 분에게 관심이 더 갔답니다. 왜냐하면 남자친구가 형수님의 '왕 팬'을 자처했거든요. 결혼 삼년 차이신데, 음식 솜씨도 좋으시고, 젖먹이 조카도 혼자 너끈히 키우시고, 부모님께도 참 잘하신다고요. 그런 얘기를 들으며, 제가 마음속에 그리던 이미지는, 후덕하고 인심 좋은 맏며느리의 모습이었습니다. 맞벌이 워킹맘으로 살아가야 할 저와는 접점이 없는.

그런데 그런 선입견은 상견례 날 바로 깨지고 말았습니다. 일단 예비 형님의 외모와 패션이 세련된 커리어 우먼 쪽이셔서 놀랐고, 집에서 돌쟁이 아기와 씨름하다 나왔다고 하기엔 너무 생기 발랄하셨습니다. 게다가 시종 굳어 계신 어머님 대신 센스 있는 멘트들까지…. 미소가 만발한 얼굴로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내게 손을 내미시는데, 저는 영혼 없는 미소로 그 손을 간신히 잡았답니다. 그때의 제 기분은 '버거움' 바로 그것이었죠.

그 버거운 감정은 결혼 이후 한동안 저를 짓눌렀습니다. 형님은 매사에 완벽한 데다, 도무지 불만이라고는 품을 줄 모르는 분이셨거든요. 이른바 고학력 경단녀 전업주부셨는데, 본인이 포기한 그 아까운 직장에 아무 미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스펙 그렇게 쓸 거면 나 주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죠.

또 한 가지, 형님에게 없는 것은 일부 경단녀들의 '콤플렉스성 부심'이었습니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느니, 얼마 벌자고 애 두고 나가냐느니, 그런 염장 지르는 소리 일절 없으셨죠. 그냥 본인은 살림과 육아가 적성에 맞고 재미있어서 그걸 일처럼 열심히 한다는 분이었습니다. 자연히 아이들은 반짝반짝 예쁘게 자라났고, 살림이나 고부 관계도 윤기 있게 잘 돌아갔죠.

그에 비하면 제 사는 모습은 좌충우돌 엉망이었습니다. 계속 일하자니 몸도 약한 친정 엄마에게 육아를 부탁하는 불효녀가 돼야 했고,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과는 가사 분담에 대한 스트레스로 유치한 말다툼을 이어갔습니다. 그 와중에 눈치 없는 남편은 밉살맞은 소리를 합니다. "우리 집안이 분란 없이 잘 돌아가는 것은 형수님 덕이다." "똑똑하고 많이 배운 엄마가 끼고 가르치니, 애들 성적은 저절로 나오던데 무조건 학원 타령하는 여자들 한심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발끈해서, 나도 당장 전업이 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삐딱해져서 속으로 형님을 헐뜯곤 했습니다. 그래 봤자 팔자 좋은 전업주부일 뿐, 운 좋게 고소득 전문직 아주버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런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거라고요. 어린 시절 열심히 배우고 공부한 것이 1등 신랑감 만나는데 오롯이 쓰인다면…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 나와서 이뤄낸 일이라곤 자식도 같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밖에 없다면…. 그런 새장 속의 인생 전혀 안 부럽다고요.

돌이켜보면 참 제가 못났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저는 폄하까지 했네요. 그러나 그런 불편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건 결국 세월이더군요. 제가 결혼 5년 차 때 시어머님이 디스크 수술을 받으셨는데, 그때 형님이 당연한 듯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형님이 어머님께 매일 전화를 드리신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형님은 흔히들 말하는 팔자 좋은 전업주부는 아니었습니다. 천성을 타고난 데다 노력까지 하는 상위 1프로 전업주부. 감히 제가 명함을 내놓을 수 없는 대상임을 인정하고 저도 팬이 됐습니다. 그제야 제 마음이 가벼워지더군요.

그런데 저의 십 년 팬심에 스크래치가 생기는 일이 지난여름에 있었답니다. 여름 휴가차 두 가족이 시골 어머님 댁에서 2박을 하고 왔는데, 그 사흘간 지켜본 형님의 자녀 교육법은 요즘 어디서도 보기 드물게 남녀차별적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른들과 대화하며 쉬게 하고 딸은 쉼 없이 부엌에 드나들며 과일을 깎아내고 차를 나르게 하더란 말입니다. 심부름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자는 계속 분위기를 살펴가며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조선시대 같은 훈계까지 하시더군요. 심지어 돗자리에 일회용 숟가락을 놓을 때도 멀쩡한 것은 어머님과 남자들 앞에 놓고, 부러지거나 휜 것은 여자들 앞에 놓도록 가르치시는 겁니다. 딸만 둘 키우는 저로서는 답답했습니다. 우리 딸들이 살아갈 세상과 조카딸이 살아갈 세상은 다른 세상일까요? 여자라는 이유로 오빠가 선풍기 앞에 드러누워 책 읽을 동안 식혜를 떠다 줘야 하다니…. 우리 집 딸들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저도 모르게 형님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형님. 평범한 우리 딸들은 형님 같은 완벽한 현모양처 시어머니 만나면 안 될 거 같아요. 쫓겨나든지, 집 나올 거 같아요."

그날 형님은 저의 도발적인 발언에 대해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 생각이 없으셨을 리는 없죠. 오늘 문득 메시지를 보내셨네요. 아마 추석 명절의 만남을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풀고 싶으셨겠지요. 저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메시지 창을 열었습니다.

"동서 덕분에 주위를 돌아봤어. 내가 너무 내 안에만 갇혀서 살아왔더라고. 그러나 여자를 무시하는 마음은 전혀 없어. 난 내가 여자인 게 너무 좋고, 오히려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하다고까지 생각해. 만년 철 안 드는 남자들이 미덥잖고 안쓰럽게 느껴져 그럴 뿐. 그러나 세상에는 나같이 생각하는 여자들만 있는 게 아니겠지. 내 딸만 해도 나의 복사판이 아니라는 걸 요즘 뼈저리게 느껴. 더구나 미래의 며느리는 얼마나 다를까? 그동안 동서도 내게 맞춰주느라 수고 많았어. 그리고 따끔한 한마디, 고마워. 내가 나쁜 시어머니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곁에서 감시해 줘."

이럴 줄 알았습니다. 형님은 이런 사람입니다. 경쟁도 견제도 밀당도 필요없는 사람. 형님이 누리는 행복은 고소득 남편 때문도 아니고 고스펙 전업이라서도 아닐 겁니다. 어느 순간에나 진심을 담는 재능 때문이죠. 저 같은 보통 사람이 그런 사람을 곁에 둔다는 건 꽤 버거운 일이었답니다. 그러나 미워할 수는 없네요. 저는 형님에게 답을 보냈습니다.

"형님은 진정 1프로의 멋진 여인이세요. 쫓아가긴 힘들어서 멀리서 응원해요. 제가 팬인 거 아시죠? 추석에 만나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조선일보 B11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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