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민정수석과 '마린온' 미스터리… 유가족은 울고 있다

권승준 기자
입력 2019.09.07 03:00

[아무튼, 주말]
前KAI사장 김조원 민정수석 임명 논란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피의자가 검찰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갔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인사입니까."

문재인 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으로 일했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 얘기가 아니다. 지난 7월 조 후보의 후임으로 임명된 김조원(62) 수석 얘기다. 김 수석 임명을 비판하는 이들은 순직한 해병대원들의 유족이다. 작년 7월 17일 경북 포항 제6항공전단 비행장에서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하다가 추락하면서 조종사 김정일 대령 등 5명의 해병대원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마린온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1조3000억원을 들여 2012년 개발한 국산헬기 '수리온'이 원형이다. KAI는 이를 해병대용으로 개조해 2018년 1월 해병대에 인도했다. 하지만 인도 6개월 만에 추락 사고가 일어나면서 KAI 책임론이 불거졌다. 김 수석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10월 KAI 사장으로 임명됐다. 항공 관련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낙하산 인사' 중 하나로 꼽혔다.

사고 한 달 뒤인 작년 8월 유족들은 김 수석 등 추락 사고와 관련된 이들을 살인죄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사건을 대구지검 포항지청 형사1부에 배당했다. 법적으로 김 수석은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인 셈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검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고위 공직자가 됐다. 민정수석에 형사사건 피의자를 임명한 일은 전례가 없다. 게다가 사건 당사자가 민정수석이 된 마당에 국군 장병 5명이 사망한 사건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날개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는 헬기 납품한 KAI

사고 당시 마린원은 이륙 4초 만에 회전날개가 동체에서 통째로 분리되면서 추락했다. 해병대는 민·관·군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위원회를 꾸려 5개월간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그해 12월 조사위가 발표한 최종 결론은 '부품 결함'. 조사위에 따르면 헬기의 날개와 동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로터마스트라는 부품에 균열이 생기는 결함이 있었고 이것이 사고로 이어졌다. 이 부품을 납품한 프랑스 하청업체 '오베르듀발'사(社)에서 제조 공정상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인정했다고 조사위는 발표했다.

하지만 유족은 조사위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이자 사고로 순직한 박재우 병장의 삼촌인 박영진 변호사는 "사고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헬기의 회전날개 4개 중 1개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그 뒤에 나머지 3개가 분리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로터마스트에 균열이 있어 날개와 동체가 분리된 것이란 조사위 결론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에 앞서 이륙하자마자 날개 1개가 먼저 떨어져 나가는 건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로터마스트 외에 다른 부품 결함이 있을 수 있단 얘기다. 두 번째는 KAI의 검수 책임이다. 결함이 있는 부품을 납품받았다고 해도 헬기 개발과 인도는 결국 KAI가 한 것이다. 헬기를 인도하기 전에 기체 성능을 철저히 검수하고 테스트도 충분히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에 인도 6개월 만에 날개가 동체에서 떨어지는 황당한 사고가 벌어진 것 아니냐는 것이 유족의 주장이다. KAI에서 개발 관련 일을 했던 A씨는 "국방부에 무기를 납품하는 계약은 보통 인도 기한이 정해져 있고 그걸 칼같이 지켜야 한다"며 "마린온을 인도할 당시 KAI는 박근혜 정부 당시 방산비리 사건 등에 연루되면서 경영 위기 상태였기 때문에 실적을 위해 일정을 맞추려고 서둘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린온 헬기가 지난달 25일 있었던 동해수호훈련에 투입되지 않은 사실도 석연치 않다고 지적한다. 이 훈련의 핵심은 이른바 '독도 수호 작전'으로 불리는 해병대의 독도 상륙이다. 하지만 해병대는 마린온 대신 육군의 대형 수송헬기인 치누크에 탑승해 독도로 이동했다. 조사위가 밝힌 대로 마린온 부품 결함이 최종 결론이라면, 이미 그 결함을 보완해 훈련에 투입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은 뭔가 다른 결함이 있다는 방증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국방안보포럼 신종우 사무국장은 "동해수호훈련뿐 아니라 강원도에 산불이 났을 때 온 나라의 모든 헬기가 다 동원되는 와중에 마린온만 뜨지 않았다"며 "장병 5명이 순직한 지 1년이 지났는데 헬기는 여전히 활용이 안 되고 사고 책임을 져야 하는 KAI도 이 문제에 침묵 중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작년 7월 추락사고가 일어났던 것과 같은 기종의 마린온 헬기. / 조선일보 DB
1년 동안 압수수색도, 소환 조사도 없었다?

지난 7월 19일 고(故) 박재우 병장의 아버지 박영호씨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마린온 추락 사건을 수사하는 포항지청 부장검사가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싶으니 포항지청으로 와 달라"고 한 것이었다. 박영진 변호사는 "고소한 후 1년이 지나는 동안 아무 연락도 없다가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문자로 사건을 설명하겠다고 하는 건 무슨 경우냐"며 "그 문자가 오고 나서 1주일쯤 있다가 김조원 사장이 민정수석으로 임명되는 걸 보고 '검찰이 속이 빤히 보이는 짓을 하는구나' 싶어서 형(박영호씨)과 상의해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지난 7월 24일 김 수석을 조국 전 수석의 후임으로 내정했다. 검찰이 김 수석과 청와대 눈치를 보고 유족 달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의 마린온 추락 사건 수사는 통상적인 수사 진행과 많이 다른 편이다. 보통의 방산 비리 수사라면 KAI 등을 압수수색해 기체 개발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한 후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하는 것이 정석이다. 검찰은 2017년 7월 이 정부가 박근혜 정부 당시 방산 비리 의혹 수사를 적폐 청산의 하나로 지목하자, 곧바로 KAI를 압수수색했다. 3개월간 분식회계 등의 혐의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당시 김인식 KAI 부사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검찰은 KAI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김 수석을 비롯한 관련자 소환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에 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전직 검찰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 속된 말로 '사건을 뭉갠다'고 할 때 이런 식으로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는 방식을 종종 쓴다"며 "김 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이니까 검찰도 분명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공직 생활 대부분을 감사원에서 했다. 주로 법조인들이 맡는 민정수석에 비법조인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인사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면서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15년 문 대통령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있을 때 김 수석을 당무감사원장으로 임명했다. 김 수석은 이때 노영민 현 청와대 비서실장(당시 국회의원)이 피감기관에 본인의 시집을 강매한 사건이 불거지자 그에 대한 엄중 징계를 요청해 화제가 됐다. 노 실장은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고 20대 총선에도 나가지 못했다. 김 수석이 노 실장과 대등할 정도로 문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이른바 '진문(眞文)'이란 평가를 받게 된 사건이었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김 수석이 예전부터 문 대통령과 자주 등산을 즐겼고 사석에선 문 대통령과 '친구'라고 할 정도로 친분이 있다"며 "KAI에 내려보낸 것도 그만큼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방산 비리를 청산하겠단 명분으로 임명한 김 수석이지만, 또 다른 방산 비리가 불거지면 정권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마린온 추락사건 수사에 관해서는 청와대나 김 수석이 관여한 바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B9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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