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처럼 우아한… 저만의 브람스 들려드릴게요

김경은 기자
입력 2019.09.03 03:00 수정 2019.10.25 15:25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한 美 바이올리니스트 스텔라 첸
서울·인천·광주서 기념 공연

피겨 꿈 열한 살에 접었지만 내 롤모델은 김연아

"김연아 선수가 얼음 위에서 점프할 때마다 숨이 멎는 듯했죠. 그건 단순한 뜀박질이 아니었거든요. 스포츠와 음악이 결합한 예술의 경지! 그녀를 보며 마음먹었죠. '스텔라, 저처럼 우아한 역동성을 너는 바이올린에 쏟아보는 게 어떻겠니?' 하고."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히긴스'와 함께 서울에 온 스텔라 첸. "남보다 더 높이 뛰어야 이기는 스포츠와 달리 음악은 내 안에서만 완벽히 커 나가기 때문에 더 빠져들어요." /김지호 기자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스텔라 첸(27)이 침을 꼴깍 삼켰다. 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는 2위를 한 캐나다 바이올리니스트 티모시 추이와 함께 국내 주요 도시를 돌며 '2019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위너스 콘서트'에 서느라 분주했다. 국제 무대에서 손꼽히는 권위를 자랑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해마다 열리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 성악이 돌아가며 한 차례씩 수상자를 내기 때문에 바이올리니스트가 주인공이 된 건 2015년 우승자인 임지영 이후 4년 만이다. 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첸은 "그저께 연주하러 간 통영에서 된장 넣고 푸짐하게 끓인 꽃게해물탕을 맛있게 먹었다"며 "콩쿠르에서 우승해 가장 기쁜 건 낯선 곳으로 여행할 기회가 확 늘었다는 것. 홍대 앞 스시, 노릇하게 구운 양꼬치까지 한국에서 접하는 맛과 냄새가 내 오감을 쉴 틈 없이 건드린다"고 했다.

퀸 엘리자베스뿐 아니라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 티보 바르가 콩쿠르에서도 우승한 '검증된 신인'이지만 일곱 살 때부터 바이올린과 함께 피겨스케이팅을 배웠고, 2015년 하버드대에선 심리학을 전공했다. 이듬해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음악 석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줄리어드음악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김연아 선수처럼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경기를 샅샅이 분석했는데, 그녀의 연기가 아름다운 건 음악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이란 결론을 얻었죠. 음악의 속성을 알고 그 흐름에 맞춰 점프하니 그녀의 경기는 스포츠를 넘어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첸은 열한 살 때 피겨를 그만뒀고 이후 바이올린에 올인했다. "둘 다 엄청난 연습을 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성취잖아요." 하나라도 잘하려면 전부를 걸고 견디는 인고의 시간이 절대적이라 생각했다.

"작곡가 슈베르트를 좋아해요. 깨질 듯 맑고 섬세한 가곡을 참 많이 썼지만, 그만큼 상처를 잘 받고 내면에 약점도 많은 사람이었죠. 근데 그걸 또 숨기지 않고 밖으로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할수록 솔직해요." 하버드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이유 또한 '솔직함의 근원을 파헤치고 싶어서'였다. "무대에 올라가 많은 사람 앞에서 연주하면 원하지 않아도 저의 내면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요. 어차피 내보일 거라면 지식과 지혜로 꽉 찬 저를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학교에 있는 동안은 원 없이 공부했다.

남은 콘서트는 4일 인천 엘림아트센터와 5일 서울 노원문화회관, 6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우승 부상으로 4년간 대여받은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히긴스'로 브람스의 'F―A―E' 바이올린 소나타와 쇼송의 시곡, 왁스만의 '카르멘 환상곡'을 선보인다.


조선일보 A20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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