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보 고립, 외교 실종, 경제 위기 자초

입력 2019.08.26 03:20

북한이 24일 동해를 향해 단거리 발사체 두 발을 쐈다. 한·미 연합훈련이 끝난 지 나흘 만이다. 한·미 훈련이 끝나면 북한이 대화할 것이라던 정부만 또 바보가 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김정은은 미사일 발사를 좋아한다"는 어이없는 말을 또 했다. 그는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 미사일이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트럼프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은 김정은을 달래 핵실험과 ICBM 발사를 막는 것과 한국에 방위비를 더 받아내는 것뿐이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위해 그 두 가지 업적을 자랑할 수 있다면 한국의 안보는 부동산 매물 취급하듯 한다.

트럼프의 천박한 행태에도 한·미 동맹이 버텨온 것은 국무·국방 관료 조직과 의회, 그리고 한반도 전문가 같은 주류 세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한국에 강한 실망감을 공개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지소미아를 주도한 것은 미국이다. 한·미·일 세 나라를 공동의 안보 축으로 묶는 매개체가 바로 지소미아다. 미국은 그 삼각 안보 협력망으로 자신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려 한다. 미국의 국가안보 보좌관, 국방장관,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잇달아 방한해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한 것도 그 같은 핵심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내렸다. "미국도 이해했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1950년 1월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이 제외된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발표한 것이 5개월 후 6·25 전쟁을 불렀다. 한·미·일 삼각 안보를 거부한 지소미아 파기는 한국 스스로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한 발을 내민 것이나 마찬가지다.

6·25 때 최초 투입된 미군은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규슈에 주둔하던 24사단이었다. 현재 5만명이 넘는 주일 미군의 일차적 임무도 한반도 유사시 주한 미군을 지원하는 것이다. 도쿄의 주일 유엔군 사령부는 주한 유엔군 사령부를 후방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오로지 그 목적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에서 공수될 증원군의 1차 집결지는 오키나와에 있다. 그 때문에 일본은 북의 미사일 위협을 받고 있다. 정부가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거부하면 일본이 북의 위협을 감수하고 한반도 미군 지원에 전력을 다하겠나. 김정은이 가장 기뻐할 소식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은 '김정은 모시기' 한 가지밖에 없다. 남북 관계만 잘 굴러가면 한반도 운전석에 앉아서 미국·중국·일본·러시아도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대화 채널을 뚫은 북은 대놓고 우리를 따돌리고 있다. 트럼프도 대북 협상의 성과를 독차지하기 위해 한국의 중재를 성가셔한다. 김정은은 효용가치가 떨어진 문 대통령을 향해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 막말 모욕도 서슴지 않는다. 총선 때 남북 쇼를 하려면 대북 제재 해제에 앞장서라는 엄포다. 한·일이 충돌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하는 합동 작전을 벌였다. 러시아 군용기는 우리 영공(領空)까지 침범하고는 우리 공군의 경고사격을 "공중 난동"이라고 되레 비난했다. 지소미아 파기 사태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 중국과 러시아가 다음엔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영향권을 넓히려 들지 모른다. 이 심각한 사태를 자초한 이 정부에는 '외교'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외교를 누가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외교 안보가 흔들려도 경제가 탄탄하면 위기를 넘을 수 있다.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을 29% 인상했는데 저소득층 임금 소득은 오히려 29% 하락했다. 빈곤층 소득을 끌어올려 분수 효과를 일으킨다는 소득 주도 성장이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가계소득 증가율이 3.6%였는데 근로자 한명당 대출금은 7.4% 늘어났다. 빚이 소득보다 2배 이상 빨리 증가한 것이다.

올 상반기 늘어난 일자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일자리가 99.3%였다. 꽁초 줍기, 농촌 비닐 걷기 같은 가짜 일자리가 그중 절반이다. 제조업 일자리는 2년 새 15만개나 줄었다. 민간의 고용 창출 기능이 완전히 망가졌다. 중간 소득의 50~150% 계층인 중산층은 문 정부 2년 새 5%포인트 이상 줄었다.

2분기 경제성장률에서 정부 기여분을 빼면 0.2%포인트 감소였다. 세금 퍼붓기를 제외하면 진짜 경제성장은 마이너스라는 얘기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수출은 이번 달까지 9개월째 감소를 이어가고 있다. 수출의 80%를 담당하는 10대 그룹의 상반기 영업이익이 작년의 반 토막이 났다. 일본의 수출 규제와 미·중 무역 전쟁, 홍콩 사태, 브렉시트 난항에 지소미아 파기에 따른 파열음 같은 외생 변수까지 겹쳐지면 경제의 내리막 그래프는 한층 가팔라질 것이다. 이것이 금융 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하면 심각한 사태로 번질 수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다"고 한다. 중병에 걸렸는데 건강하다고 우긴다.

문 정부 2년 만에 안보는 뿌리에서부터 흔들린다. 주변의 친구들은 멀어지고 적대 세력들은 함부로 우리를 흔들어댄다. 그런 가운데 나라 경제는 빠른 속도로 위기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러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라 사정이 이런데도 국정 책임을 진 정권은 아집뿐이다.



조선일보 A35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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