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의 워싱턴 Live] 美국방부 "이견해소 희망"→"강한 실망" 4시간만에 입장문 바꿔

입력 2019.08.24 03:02

동맹국에 '실망' 외교표현은 이례적… 외교街 "전례 흔치 않아"
美소식통 "한국이 美불편 알면서도 파기 결정한 것에 주목…
文정부, 이미 약해진 한미동맹의 매듭 중 하나를 풀어버렸다"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강한 우려와 실망'이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뿐 아니라 국무부·국방부에서 내놓은 공식 반응에는 한결같이 '실망'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동맹국을 상대로 한 외교 용어로는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다. 심지어 국방부는 한국의 파기 결정이 내려진 직후 "한·일 간 신속한 이견 해소를 희망한다"는 다소 부드러운 표현의 반응을 내놓았다가, 4시간 뒤 다시 "강한 우려와 실망"이라는 입장을 새로 내놓았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본다는 뜻이었다.

22일(현지 시각) 오전 트럼프 행정부 한 고위 관리는 본지에 "몇 시간 전 한국으로부터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통보받았다.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는 "지소미아와 관련해 한·미 간 사전 협의 같은 것은 없었고, 미국이 한국에 지소미아를 유지할 것을 요청한 일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미국 측이 이해했다"고 한 것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폼페이오 "한국 결정에 실망"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22일(현지 시각) 캐나다 오타와에서 캐나다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에 대해 "우리(미국)는 한국이 정보 공유 합의에 대해 내린 결정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AFP 연합뉴스
지난주까지만 해도 워싱턴에선 지소미아 연장 시한인 24일까지 한국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동 연장되므로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다. 지소미아에 대해 한·미가 긴밀한 소통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국이 22일 파기 결정을 하기 전날에도 이 관리는 기자에게 "한국에서 지소미아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들은 게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는다면 큰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지소미아 처리를 지켜본 미국 관리들은 파기 결정에 상당히 놀랐다는 반응이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방한 때 등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 측에 지소미아 유지를 권하는 미국 입장을 전달해왔고,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가 일본과의 갈등을 완화하는 쪽으로 움직인다고 봤는데 전혀 상반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후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에게 통보하면서 이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곧 공식 입장 조율에 들어갔다. 트럼프 정부 관계자는 현지 시각으로 22일 오전 "전례 없이 강도 높은 표현을 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몇 시간 후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일제히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전직 외교관은 "전례가 흔치 않은 수준"이라고 했다. 한 관리는 '한국 정부'라고 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Moon Administration)'라고 한 점에 주목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캐나다 방문 중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한국이 정보 공유 합의에 대해 내린 결정에 실망했다"고 했다. 국방부는 이날 오전 9시 본지 질의에 "한·일 이견 해소 희망"이라고 답했지만, 오후엔 "문재인 정권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한다"는 입장문을 다시 냈다. 국무부 관계자 역시 본지 질의에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하면서 "미국은 이번 결정이 미국 국익과 동맹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을 문재인 정부에 거듭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날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기술적인 의미보다 정치적·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지소미아가 연장되지 않는다고 당장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진 않겠지만, 미국은 한·미·일 안보 협력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아 미국이 불편해질 것을 알면서도 한국이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했다는 점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트럼프의 비(非)전통적인 동맹관으로 이미 약해진 한·미 동맹을 묶고 있는 매듭 중 하나를 풀어버린 것과 같다"고 말했다.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겸 한일담당 부차관보는 22일 "한국이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으리라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나 폼페이오 장관이 한국이 이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명확하게 미국 입장을 밝혀 사전에 막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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