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위협 커지는데… 韓美동맹도 흔들릴 우려

안준용 기자 노석조 기자
입력 2019.08.23 03:07

[지소미아 파기] 한·일 이어주는 유일한 군사정보협정, 체결 3년만에 폐기
美 볼턴·에스퍼·비건의 지소미아 유지 요청, 한국이 뿌리친 셈
日, 28일 백색국가 배제 시행 앞두고 수출규제 품목 확대할수도

청와대가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3년 만에 파기하기로 하면서 1970년대 이후 미국 주도로 50년 가까이 유지돼 온 한·미·일 안보 체제 자체가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동북아 안보와 인도·태평양 전략을 위해 지소미아 연장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그런 지소미아가 깨지는 만큼 한·미 동맹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소미아 파기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가 와해되고, 북·중·러와 미·일이 맞서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에서 한국이 고립될 수 있다"고 했다.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은 "한·미·일 안보 협력 종료를 향한 서막으로, 우리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라고 했다.

◇韓日 갈등 격화, 美는 다른 청구서 내밀 수도

정부의 이날 결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이후 관망세였던 한·일 갈등이 또다시 격화될 전망이다. 오는 28일 '화이트 리스트 한국 배제' 조치 시행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품목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일본이 마지막까지 지소미아 유지를 주장한 것은 미국에 '일본은 한국과 달리 3국 안보 협력을 중시한다'는 명분을 쌓으려는 측면이 컸다"며 "아베 총리가 이번 조치를 빌미로 한국과 강대강(强對强) 장기 대치 국면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미국 눈치를 보던 일본에 강경 대응의 명분을 줬다는 것이다.

김유근 靑안보실 차장 “지소미아 종료”, 고노 외상 “매우 유감, 단호하게 항의할것” - 김유근(왼쪽)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폐기를 발표하고 있다. 고노 다로(오른쪽) 일본 외무상은 이날 청와대 발표 직후 “한국 정부가 협정 종료를 결정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단호하게 항의할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로이터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한·미 관계에 미칠 파장이다. 실제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최근까지 청와대와 외교부에 지소미아 연장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지소미아 철회 가능성이 거론되자 "동북아 안보를 위한 한·미·일 3국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지소미아 연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최근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지소미아 연장을 강조했다. 청와대는 이를 의식한 듯 이날 "지소미아 종료 검토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왔다"며 "한·미 동맹의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해 북한과 중국 등을 견제하려는 미국 구상 동북아 전략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지소미아 파기로 이 전략에 차질이 생기면 미국이 또 다른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이미 인도, 호주 등이 미국의 강력한 '안보 파트너'로 부상했다. 한·미·일 안보 체제가 흔들리면 동북아에서 우리나라가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외교가에선 "미국이 한국의 설명을 충분히 납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지소미아 파기를 계기로 향후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을 통해 동맹국의 안보 정책에 기여하라고 압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향후 미국은 노골적으로 남중국해 문제 등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실질적 기여'를 하라고 요구하거나, 지소미아 파기를 방위비 협상의 지렛대 등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그간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에서 빠져 있던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앞으로 더욱 부정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당장 미 조야(朝野)의 우려와 비판도 커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환영할 北, 내심 반길 중·러

지소미아 체결 당시 한·미·일을 강하게 비난했던 북한은 이번 우리 정부의 파기 결정을 반기며 북·중·러 밀착을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은 미국과의 실무협상을 앞두고 중·러와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이달 들어 중국과 군사협력 강화 방안을, 러시아와는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 전략 등을 논의했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북핵 협상이 교착에 빠진 고비 상황에서 북한 문제에 효과적인 대응이 더욱 어려워졌고, 최근 한반도에서 벌어진 중국·러시아의 도발이 더 잦아질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의 '약한 고리'가 돼버린 한국을 더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A2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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