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코미디·감동을 한 그릇에? 욕심부리다 맛 없는 비빔밥 됐네

송혜진 기자
입력 2019.08.23 03:01

[영화 리뷰] 광대들

욕심은 많으나 갈 길을 모른다. 21일 개봉한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은 정체불명의 비빔밥과도 같다. 여러 가지 맛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성급히 한 그릇에 담다 보니, 그 맛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사극과 코미디, 감동의 드라마를 모두 구현하려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배경은 조선시대 세조 말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박희순) 임금을 향한 민심이 험악해지자, 한명회(손현주)는 솜씨 좋은 광대패에게 왕의 미담을 꾸며 퍼뜨릴 것을 주문한다. 이에 덕호(조진웅)를 비롯한 광대패는 백성들이 놀라고 두려워할 거짓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요즘 계속 논란을 빚는 여론 조작이나 가짜 뉴스 같은 소재를 조선 시대 이야기에 빗대 풀어냈다.

광대 덕호는 “나라님을 향한 험악한 민심이 바뀌도록 가짜 풍문을 퍼뜨려 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세조실록'에 기록된 40여건의 기현상이 알고 보면 이 광대패가 연출한 것이라는 발상의 시작은 나쁘지 않다. '세조 10년, 회암사 원각 법회 중 부처님이 현신하셨다' '세조 12년, 임금께서 금강산 순행 중 땅이 진동하고 황금빛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더니 화엄경 속 담무갈보살이 1만2000 권속과 나타났다' 같은 역사 기록 속의 장면을 광대들이 구현하는 과정이 간간이 웃음을 자아낸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팩션, 혹은 코미디 사극으로 가볍게 달리던 영화는 그러나 러닝타임이 흐르면서 돌연 표정을 바꾼다. 권력에 취한 한명회의 야심을 보며 뒤늦게 후회하는 광대패 이야기를 자못 비장하게 이어 붙이고, 사건이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을 배우들 입을 통해 구구절절 늘어놓으면서, 영화는 무더위에 녹아내린 인절미처럼 탄력을 잃고 늘어진다.

손현주·박희순·조진웅·최원영·고창석 등 연기 잘한다는 소리 듣는 배우들을 두루 모았으나, 이 중 누구도 날카롭게 빛을 내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생기 없는 캐릭터 위에서 노는 것에 한계가 있어서일까. 한명회도 세조도 덕호도 어딘지 모르게 누군가의 복사본처럼 보인다. 이런 광대패에게 속아 넘어갈 관객이 2019년에도 있을까.


조선일보 A21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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