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契로 자녀에 '황제스펙'… 386 교수 '그들만의 캐슬'

박세미 기자 원선우 기자
입력 2019.08.23 03:01 수정 2019.08.23 10:57

80년대 정의·공정 부르짖던 그들, 특권층 형성하며 카르텔 만들어 타워팰리스 연회장 등에서 모임
연구실 인사권 쥔 이공계 내 관행 "방학 때 오는 '고교 인턴'은 상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조모(28)씨의 '황제 입시' 논란을 계기로 '386 교수 부모'들이 '스펙 품앗이'로 자녀들을 대학에 진학시켜 온 민낯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자녀들을 외고 등 특목고에 보낸 386 교수 부모들은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스펙'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들 간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한다. 이들의 자녀는 학생부종합전형 위주의 대입 전형에 응시하고, 거기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다. 한 교육계 인사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며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던 이들이 정작 자기 자녀들의 입시에선 특권층처럼 움직였던 것"이라고 했다.

이는 조 후보자 딸 사례에서 잘 드러났다. 조 후보자는 서울대 82학번, 아내 정모 교수는 서울대 81학번이다. 조씨를 국제적 수준의 병리학 논문에 '제1 저자'로 올려준 단국대 장영표 교수는 1983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장 교수는 "우리 큰 애가 한영외고 나왔다. 엄마들끼리는 안다"고 했다. 교수 인맥에 외고 학부모 인연까지 겹쳤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는 조 후보자 딸이 2013년 이 대학원에 응시했을 때 면접관이었다. 그는 1967년생 서울대 85학번으로 조 후보자와 함께 '민주화를 위한 서울대 교수협의회'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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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조 후보자 아내인 정 교수는 2009년 딸을 공주대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며 김모 지도교수를 직접 찾아갔다. 김 교수는 정 교수와 서울대 81학번 동기로 대학 시절 천문학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다. 조씨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공주대 논문에 '제3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숙명여대에서 열린 여고생 물리 캠프에서 조씨 과제를 지도한 이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A교수였다. A교수는 정 교수와 서울대 81학번 동기다. 조씨는 이 캠프에서 한국물리학회가 주는 장려상을 받았다. 조씨는 이런 경력을 자기소개서에 포함해 고려대 진학에 성공했다. 이들 중 일부는 조 후보자 부부와 친분이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386 교수는 "솔직히 우린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고 하기도 했다. 지난 5월 교육부는 '미성년 공저자 논문 실태 전수조사'에서 53개 대학 교수 102명이 논문 160편에 자기 자녀를 공동 저자로 등재했다고 밝혔다. 또 동료 교수의 자녀나 친구의 아들딸 등 미성년자를 자기 논문의 공저자로 올린 경우는 399건으로 집계됐다.

'386 교수 부모' 인맥은 외고 내에서도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카르텔'로 알려져 있다. 조 후보자 측은 "조 후보자 딸이 학교 주관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에 적법하게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한영외고는 그런 프로그램을 공식 운영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386 교수 부모들이 유학반을 중심으로 일종의 '스펙 계(契) 모임'을 만들어 자기 자녀들에게 혜택을 줬다는 것이다. 한 외고 졸업생은 "교수 엄마 아빠를 둔 아이들만의 세계가 있었다"며 "외고생이라고 다 같은 신분이 아니었다"고 했다. 실제 한영외고 유학반 학부모들은 타워팰리스 연회장 등에서 정기 모임을 열었고 조 후보자도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입시 전문가는 "'스펙 품앗이'는 교수 사회에서 이미 공공연한 관행"이라고 했다. 특히 교수가 연구실의 인사·재정권을 모두 쥔 이공 계열에 많다고 한다. 서울의 한 대학원생은 "방학 때마다 연구실에 오는 '고교 인턴님'은 사실상 모셔야 하는 분들"이라고 했다. 대학생들은 "현대판 음서제"라며 비판했다. 이들은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교수 자식들이 온갖 희한한 전형으로 입학한다' '다른 대학 교수 아들이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우리 과 교수들과 다 친하더라'고 하고 있다. 교수 자녀들이 장학금 혜택을 쉽게 받거나 로스쿨이나 의·치전원 등에도 대거 진학하는 데 대해서도 "교수 자녀 입학 현황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다음 달 6일 시작하는 2020년도 대입 수시 모집 원서 접수를 앞두고 수험생 부모들도 허탈감을 호소했다. 학부모 인터넷 커뮤니티 등엔 '부모가 능력이 없어서 눈에서 피눈물이 나온다' '애들 방학에도 학원으로 내몰고 주말에도 대여섯 시간씩 학원 가게 한 내가 바보 같다'는 글이 폭주했다. '나만 모르는 수시 전형과 의전원 무시험 전형으로 아이 인생 금수저로 만들어준 부모가 얼마나 많았을지 분노가 치민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듯 노력한 애들을 어쩜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내용도 많았다.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은 22일 "조국 딸 입학 비리에 백 없는 학부모는 가슴 치며 분노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모든 길을 막아놓고 자기 자식에겐 온갖 혜택을 다 누리게 했다"며 조 후보자 사퇴를 촉구했다.


조선일보 A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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