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까지 '지소미아 유지' 기류...文대통령, 왜 막판에 마음 돌렸나

박정엽 기자
입력 2019.08.22 20:56 수정 2019.08.22 21:43
"청와대 내부용으로 거의 매일 여론 조사"...파기 여론 우세하다 자체 판단한 듯
"文, 광복절 경축사로 시그널 보냈는데...日은 반응 없어"...유지 명분 약해졌다 판단
野 "조국 정국 물타기용...조국 살리기 위해 한미동맹과 바꿔"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NSC 상임위 종료 직후 상임위원들로부터 GSOMIA 협정 종료 결정을 보고받고 1시간 동안 추가 토론을 더 한 뒤 협정 종료 결정을 재가했다. 이 자리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도 참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후 3시정각에 NSC 상임위를 개최해 최종적으로 GSOMIA 연장 여부를 심도깊게 논의해 상임위 차원에서 종료를 결정했고, 상임위원들은 그 후 자리를 옮겨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 옆 소회의실에서 문 대통령에게 상임위 결정을 보고했다. 사실상의 NSC 안보관계 전체회의로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청와대 제공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은 22일 오후 청와대가 종료 방침을 공식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정치권에선 유지될 가능성이 거론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오후 3시부터 열린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 멤버들로부터 협정 종료로 모아진 의견을 보고받고 1시간가량 추가 토론을 했다. 정부도 지소미아 '유지' 카드를 막판까지 고민했다는 뜻이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까지만해도 지소미아 연장을 전제로 한 향후 시나리오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협정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청와대 기자단 사이에서도 협정 유지 쪽으로 정부가 가닥을 잡은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의 공식 발표 직전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단에 "(신문사) 윤전기를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김 차장이 협정 종료 결정을 공식 발표한 후 배경 설명에 나선 NSC 핵심관계자는 "7월말까지 상황을 보면 정부 내에서는 지소미아에 대해 유지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논의도 그쪽으로 가는 듯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사 문제가 있다고 해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지향한다는 기조 하에 과거사 문제에서는 우리 입장을 유지하되, 안보 분야에선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는 투트랙 전략은 변함없이 가야한다는 기조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기류는 우리 정부가 지난달 두차례 파견한 고위급 특사에 일본 정부가 호응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지난 2일에는 수출 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강행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향해 비난 수위를 낮추면서 외교적 해결 노력에 나서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일본을 향해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자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21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별다른 성과없이 끝나면서 문 대통령도 지소미아 종료 쪽으로 결심을 굳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할 것을 재차 요구했지만,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수출 규제 조치는 외무부가 아닌 경제산업성의 소관이란 기존 입장만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일본이 강경 기조를 풀지 않으면서 문재인 정부로서도 지지층이 반기지 않는 지소미아를 연장할 명분을 마땅히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광복절에 매우 의미있는 경축사를 했고, 매우 의미있는 신호를 보냈다고 생각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일본 주요 인사의 공개적인 발언과 외교 경로를 통한 일본측의 반응은 사실상 '반응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전날 베이징(한·일 외교장관 회담) 상황도, 일본 경제산업성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 안에선 지소미아를 연장은 하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절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지소미아 협정문을 보면 정보 공유를 의무화하지 않았다"며 "연장은 하되 교류는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틀은 유지하되 정보를 주가나 받지 않는다는 소위 절충안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면밀히 검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결국 협정 종료를 택했다. 청와대는 이를 '원칙론'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어려울 때 원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원칙대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국민의 자존감'도 종료 결정의 이유로 들었다. 이 관계자는 "명분도 중요하고 실리도 중요하고 국민의 자존감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청와대 내부용 여론조사를 거의 매일 실시했다고 했다. 국민 여론도 종료 쪽이 우세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정부의 종료 결정 배경에는 지소미아가 없더라도 한·미·일 3국 안보 협력 틀이 와해하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소미아가 체결되기 이전에도 한·미·일 3국간 군사정보 교환은 이뤄졌고, 최근에는 지소미아를 통한 정보 교류 건수가 감소추세란 점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최근 미사일 도발을 거듭하고 있지만, 핵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등 한반도 안보의 틀을 뒤흔들 대형 도발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청와대가 마지막에 지소미아 협정 종료로 선회한 것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여론 악화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국면 전환에 나선 것이라 보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를 찾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지소미아 종료 방침을 들은 뒤, 기자들과 만나 "결국 국익보다는 정권의 이익에 따른 결정이 아닌가"라며 "한편으로는 '조국'으로 어지러운 정국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의심도 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조국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반일(反日) 이슈로 덮기 위한 꼼수"라며 "문·조(문재인·조국) 동맹을 지키기 위해 한미동맹을 버렸다"고 했다.

더구나 북한이 핵무장을 한 상황에서 한국을 사정권에 둔 단거리 미사일 도발을 밥 먹듯 하는데도 정부가 "안보는 자신 있다"며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점에서 야당에선 "현 정권의 희망사고가 또 다시 확인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특히 지소미아는 정보 교환의 실효성 못지 않게 미국이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의 끈으로 중요시해왔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을 가볍게 여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 지소미아의 효과는 정보 교환에서 얻는 안보적 이익보다는 한·미·일 안보 협력의 상징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태경 의원이 "문·조(문재인·조국) 동맹을 지키기 위해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 죽창을 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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