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노총 싸움에 물류센터 배송 스톱… 생선·야채 다 버릴 판

안성=손호영 기자
입력 2019.08.20 03:00 수정 2019.08.20 13:24

홈플러스 100여곳에 신선식품 내보내는 곳, 노조가 트럭으로 막아
민노총의 비노조원 폭행이 발단… 이들이 한노총 가입하며 충돌

19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원곡물류단지 홈플러스 신선물류센터에는 '화물연대의 폭력과 협박에 더 이상은 못살겠다' '화물연대? 폭력연대?' 등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를 비난하는 현수막들이 붙어 있었다. 신선식품을 실은 트럭들이 드나들던 입구는 30여대의 5t 트럭으로 막혀 있었다. 평소라면 전국 각지에서 과일, 야채, 고기 등을 실은 트럭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던 3만3000㎡(약 1만평) 규모의 신선물류센터 트럭 상하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 화물운송분과 홈플러스 지회 소속 운전기사 60여명이 전날 밤 9시부터 점거 농성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홈플러스와 계약을 맺고 있는 운송 회사 직원들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노노 갈등으로 회사의 피해가 극심하다. 하루 파업에 30억~40억원 손해를 볼 수 있다. 신선식품은 하루만 지나도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했다.

◇발단은 민노총의 비노조원 집단 폭행

발단은 지난달 벌어진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파업이었다. 지난달 15일 화물연대 소속인 운전기사 70여명은 "운송료를 인상하고, 화물연대서 활동하다 탈퇴한 비(非)노조원 대표 최모씨를 해고하라"고 요구하며 1박 2일 파업을 벌였다.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않은 운전기사들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날 새벽 2시쯤 평소처럼 물건을 싣고 나오던 비노조원 운전기사 차량을 화물연대 조합원 10여명이 둘러싸고 차 유리와 문짝을 부수고 타이어를 찢었다. 운전기사들을 차에서 끌어내리고 집단 폭행했다. 6명의 기사가 전치 2주 이상의 부상을 입었다. 폭행을 당했던 한 60대 운전기사는 "자식뻘 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폭행당했다. 그 사람들 얼굴을 보면서 일하려니 정신적인 충격이 극심하다"고 했다.

19일 경기도 안성시 홈플러스 신선물류센터 입구를 한국노총 소속 운전기사들이 트럭 수십 대로 가로막고 있다. 노조는 전날 오후 9시부터 민노총의 비노조원 탄압 금지 등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이태경 기자
민노총은 폭행 사건 이후에도 "8월 20일까지 비노조원 대표인 최씨를 내보내지 않으면 또 파업하겠다"고 회사를 압박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운송회사 측이 지난 14일 해당 직원을 다른 사업장으로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회사 측이 민노총의 위세에 눌려 이런 결정을 내리자 비노조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틀 뒤인 지난 16일 비노조원 92명 전원이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에 가입했다. 민노총의 폭력을 더는 지켜만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원래 홈플러스 물류센터엔 화물연대 소속 노조 한 곳만 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한국노총 노조가 결성됐고 점거 농성까지 벌이게 된 것이다. 한 운전기사는 "회사는 목소리 크고 과격한 화물연대는 무서워해도, 힘없는 비노조원은 겁내지 않는다.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날 농성장에는 인근 농협물류센터 운전기사 여러 명이 찾아왔다. 지난 4월 화물연대로부터 비슷한 일을 겪은 기사들이다. 그때도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비노조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농협본사가 화물연대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하자, 파업을 벌이던 중 일어난 일이다. 이들이 유리창 등을 부순 트럭이 30대가 넘고, 21명의 운전기사가 폭행을 당했다. 갈비뼈가 부러져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있다. 한 운전기사는 "화물연대 사람 중엔 티셔츠를 살짝 들어 올려 온몸에 새겨진 문신을 보여주며 위협하는 사람도 있다. 트라우마가 생겨 정신과 진료를 받는 기사들도 있다"고 했다.

◇노노 갈등에 새우 등 터진 홈플러스

홈플러스 신선물류센터는 전국에서 운반된 야채, 과일, 생선, 고기 등을 검품·세척해 전국 100여곳의 홈플러스 점포로 보내는 곳이다. 24시간 수백 대의 트럭이 드나든다. 지난 7월 민노총 1박 2일 파업으로 홈플러스가 입은 손해액은 약 40억원에 달한다. 홈플러스 측은 이번 파업에서도 하루 수십억씩 손해가 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 홈플러스 지회 관계자는 "이런 점거 농성이 올바른 방법이 아닌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화물연대에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일을 벌였다. 최씨에 대한 전환배치 통보를 철회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 제도 등이 마련될 때까지 파업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A12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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